자금난으로 최근 부도를 낸 중견 휴대폰업체 VK의 금융권 총 여신 865억원 가운데 약 60%가 농협중앙회와 산업은행에 집중된 데 대해 금융권에 '뒷말'이 무성하다.

시중은행 등 다른 채권은행들이 대출 규모를 줄이는 와중에 이 두 은행은 반대로 VK에 대한 여신을 늘린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기업 신용평가 시스템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 "정치권의 압력을 받은 것 아니냐" 등 이런저런 얘기들이 나오는 이유다.

○다른 은행 빚 줄일 때 돈 빌려줘

2003년 7월까지만 해도 VK에 대한 대출 규모가 130억원에 달했던 외환은행은 2004년 말 여신을 91억원으로 줄였다.

VK가 부도를 낸 이번달에는 79억원까지 축소했다.

"VK가 재무제표만 놓고 보면 우량한 것처럼 보였지만 메이저 휴대폰 업체들도 흔들리는 업계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했다"는 게 외환은행 관계자의 설명.

기업은행 역시 2004년 하반기부터 VK에 대해 '경고'사인을 보냈다.

일선 지점장이 만기 연장이나 신규 대출을 요청해도 본점에서 제동을 걸며 여신을 줄여나갔다.

2004년 말 240억원 수준이던 여신 규모를 37억원까지 줄인 우리은행의 경우 VK가 지난해 2·4분기 적자를 낸 이후 신용등급을 분기마다 한 단계씩 낮추다가 지난달 '요주의업체로' 지정해 금융감독원에 보고했다

하지만 농협과 산은은 달랐다.

다른 채권은행들이 빚을 서서히 줄여나가기 시작할 무렵에 오히려 신규 대출을 시행했다.

농협은 2004년 9월 첫 대출이 나간 이후 규모가 계속 늘어 총 여신 규모가 276억원에 이르렀다.

산은도 다른 은행들의 신규 대출이 중단된 2005년 초 100억원을 최종적으로 빌려줬다.

산은은 특히 다른 시중은행들이 VK에 대한 대출만기 연장을 거의 중단한 올해 초에도 한 차례 만기를 연장해 줬던 것으로 나타났다.

○무슨 속사정이 있었을까

농협과 산은은 까막눈이었을까.

VK가 내부적으로는 곪고 있었지만 2004년 재무제표만 보면 매출 3839억원에 115억원의 이익을 냈다.

농협과 산은은 바로 이 숫자에 속아넘어갔다.

금융계 관계자는 "다른 시중은행의 기업 신용평가는 3∼6개월에 한 번씩 신속하게 이뤄진 반면 산은은 VK를 둘러싼 경영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던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은행들의 치열한 영업전도 한몫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농협중앙회의 경우 첫 대출이 나가던 당시 은행 차원에서 기업금융부문 강화에 대한 드라이브를 걸던 시점이라 다소 서두른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농협 관계자도 "당시 VK는 재무제표상으로 문제가 없는 기업이었기 때문에 우량 중소기업 발굴 차원에서 유치했다"고 설명했다.

물론 이철상 VK 사장이 이른바 '386 운동권' 출신으로 정치권 실세들과 친분관계에 있고 농협과 산은의 대출은 그런 친분이 작용했던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정확한 이유야 확인되기 쉽지않겠지만 대출심사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일깨워주는 사례이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