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세계 최고수준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던 한국경제가 하룻밤 사이 국가부도 직전까지 추락한 이유는? 전 국민의 절반인 2000만명이 붉은 티셔츠를 입고 광장을 가득 메웠던 월드컵의 축구 열기에도 불구하고 지난 4년간 K리그는 썰렁했던 이유는?

'복잡계 워크샵'(복잡계 네트워크 지음,삼성경제연구소)은 이러한 궁금증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복잡계 이론의 요체는 '복잡한 현상의 이면에 작동하는 간단한 법칙'을 찾는 것.부분으로 환원되지 않는 거시현상의 '창발효과'와 임계점을 넘어서면 점진적이고 단선적인 변화가 갑자기 극단적인 쏠림으로 바뀌는 '비선형성' 등이 중요한 설명 도구이다.

세상 일이 복잡할수록 명쾌한 이론과 원리에 대한 갈증은 오히려 커지는 법이다.

복잡한 자연현상과 사회현상을 풀어낸 고대 중국인의 이분법이 음양론(陰陽論)이었다면,복잡계 이론의 비법(秘法)은 정규분포와 거듭제곱분포라는 이분법이다.

주식시장의 움직임,세계무역의 흐름,지진대의 분포,인터넷상의 정보흐름 등은 전혀 별개의 내용으로 보이지만 거듭제곱분포라는 형태적 동질성 때문에 '나비효과'와 같은 공통의 사건전개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복잡한 현상을 명쾌한 이론과 간단한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니 솔깃하지 않은가? 사실 이것은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을 막론하고 모든 과학자들이 꿈꾸어온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잉 기대는 하지 마시라.복잡계 모델은 당장 내일의 주가를 예측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전체 주식시장의 창발적 특징을 살피는 것이 주가 되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이미 20년 이상 산타페연구소를 중심으로 복잡계 이론이 학제적 연구의 대상이 돼 왔지만 국내에서는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이 책은 그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다.

각 분야의 훌륭한 필자와 논평자의 기여를 한 곳에 체계화한 것만으로도 창발효과의 좋은 예가 됐다고 본다.

이 책에서는 물리·사회·경제·경영·행정·정치학이 어울려 금융시장,사회운동,행정조직과 거버넌스,국제정치,지역혁신체제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은유적 분석'과 '엄밀한 모델'을 쏟아내고 있다.

'은유적 분석'은 주로 사회과학자들의 버릇인데 사회현상의 기초가 되는 인간의지와 정서까지 고려한 '타당성'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반면에 물리학자나 경제학자들은 일관성이나 '신뢰도'를 중시하다 보니 엄밀한 모델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이 책에서 보여준 학제간 접근은 앞으로 성취해야 할 몫이 더 커 보인다.

이 책은 전문가나 일반인 모두에게 매우 유익한 내용을 담고 있다.

'나비효과'라는 단어를 접하고 브레서 감독이 만든 동명(同名)의 영화를 떠올렸거나,'산타페연구소'를 SUV를 개발한 자동차연구소라고 생각한 분이 있다면 특별히 일독을 권한다.

624쪽,1만5000원.

이재열 서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