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미국 영국 일본 호주 등 30여개국의 내로라 하는 건설업체들이 지구에서 가장 높은 빌딩을 짓는 '버즈 두바이' 프로젝트를 놓고 치열한 수주전을 벌였다.

8억8000만달러짜리인 이 프로젝트는 기술력 평가에서 1등을 차지한 삼성물산(건설부문)에 돌아갔다.

그동안 초고층 건축기술을 핵심 사업부문으로 정해 기술력을 쌓아왔던 삼성물산의 쾌거였다.

삼성물산은 이로써 대만 TFC101빌딩(101층·508m)과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타워(88층·452m)에 최소 160층짜리인 버즈 두바이 빌딩까지 세계 3대 마천루를 '싹쓸이'해 세계 초고층빌딩 건축시장에서 선두 업체로 우뚝 올라 섰다.



"연내 세계 초일류 기술 6개 확보"

삼성물산은 초고층 빌딩 건축을 비롯 △하이테크 공장 △도로 △항만 △발전플랜트 △주택 등을 6대 핵심 부문으로 선정,전사적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다.

올해 말까지 이들 부문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시공·기술력을 갖춘다는 목표다.

이미 초고층 및 하이테크 공장 분야에서는 '세계 1등'이란 자부심을 갖고 있다.

다른 분야에서도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도로에서는 세계 최초의 3차원 자정식 현수교인 영종대교를 건설했고,해상 교량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긴 인천대교를 현재 만들고 있다.

주택에서도 국내 브랜드 선호도 1위인 '래미안'을 중심으로 첨단·건강·환경 위주의 공동주택 주거문화를 선도하고 있다는 평이다.

특히 방수·결로(이슬맺힘)·온도·습도·냄새·소음·진동 등 건축물 성능 향상을 위한 기술력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삼성물산이 세계 최고 기술 확보에 역량을 집중하기 시작한 시점은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1세기 경제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기술력을 확보해야 하며,최고 제품을 만드는 것만이 유일한 생존전략"이라며 이른바 '신경영선언'을 주창했던 데서 출발했다.

초고층빌딩은 400억달러 거대시장

삼성물산이 세계 초일류 기술 확보를 서두르고 있는 분야는 하나같이 부가가치가 높은 유망 시장이다.

초고층빌딩 시장만 해도 2010년엔 최대 400억달러에 이를 것이란 게 삼성측의 전망이다.

세계 초고층 빌딩을 짓는 데 따르는 브랜드 인지도 효과와 임직원의 자신감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지난달 발간된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세계 200대 고층빌딩의 40%가 2000년 이후 건립됐다.

세계에서 마천루 건축 붐이 거세지고 있다는 얘기다.

전 세계적으로 50층 이상 초고층 건물을 지은 회사는 404개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이 중 초고층 건물을 3개 이상 건설한 회사는 16개사에 불과하다.

삼성물산은 현재 공사 중인 버즈 두바이 외에도 지금까지 대만 TFC101빌딩과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타워 타워팰리스 등을 포함,모두 7개의 초고층빌딩을 지었다.

세계무대에서 유명 업체들과 당당하게 겨룰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얘기다.

삼성물산측은 "3일에 한 층씩 건물을 높일 수 있는 회사는 세계를 통틀어 우리 회사밖에 없을 것"이라며 강한 자부심을 보이고 있다.

해외 우수 인력 '삼고초려'

삼성물산이 초일류 기술 확보를 위해 가장 역점을 두는 것은 인력 관리다.

특히 해외 우수 인력을 영입하는 데는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전 세계에서 매년 약 30명의 전문가를 새로 영입하고 있다.

1995년엔 일본 다이세이건설의 설계기술자 이치노헤 히데오(61)를 고문으로 스카우트했다.

그는 세계 일류업체들조차 고개를 가로젓던 말레이시아 쌍둥이빌딩의 스카이브리지 공사를 보란듯이 성공시킨 실력자다.

서울 종로 삼성타워의 스카이 레스토랑 설계도 이치노헤 고문의 작품이다.

건물 옥상에서 구조물을 조립한 뒤 이를 들어올려 정확히 짜맞추는 리프트업(Lift-up) 공법은 그가 말레이시아 스카이브리지 공사 때 적용했던 기술이다.

미국 밀레니엄 오페라하우스와 중국 진마오타워 등을 설계했던 미국계 아랍인 아메드 압델라자크 상무(47)는 이상대 사장이 직접 '모셔온' 케이스다.

아메드 상무는 이 사장의 거듭된 요청에 2003년 한국에 들어와 버즈 두바이 수주 과정에서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물산은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 기술인력에도 최고 대우를 보장하며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현재 이 회사에는 최고기술자인 마스터(임원급) 3명과 엑스퍼트 36명 등 '명장'들이 포진해 있다.

'덩치키우기'보다 '내실있는 성장'

삼성물산은 건설부문과 무역부문으로 나뉘어 있지만,영업이익의 90% 이상을 건설부문에서 올리고 있다.

그만큼 건설부문의 위상이 높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기술력을 토대로 한 시공능력 △'1등' 브랜드 이미지 △안정적인 매출구조 등이 강점으로 꼽힌다.

특히 건축·주택·플랜트·토목 가운데 기술력이 관건인 건축부문은 전체 매출의 40%에 달한다.

매출 비중이 35% 수준인 주택사업은 래미안 브랜드를 앞세워 국가고객만족도(NCSI) 8년 연속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작년 5조198억원의 매출을 올린 데 이어 올해는 5조1465억원의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이 가운데 10% 이상은 해외에서 벌어들일 계획이다.

매출목표가 다소 보수적인 것은 저가 수주 등으로 외형을 키우기보다 수익성 위주로 내실경영을 하겠다는 이 사장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