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즉 '인간의 자연환경에 대한 접근방법의 혁명'을 수행한 노동력은 어디서 왔나.

산업혁명 당시 영국 노동시장은 지리적,계층별,직종별로 분리되어 있었다.

노동의 이동이나 공급탄력성도 높지 않았다.

전통적 관습,구빈법,이주금지법 등에서 오는 심리적 영향이 많아 지역별 임금 격차가 커도 장거리 이주를 꺼렸다.


또한 인구 증가도,농업부문에서 배출된 노동력도 산업노동자를 공급하는 데 직접적으로 기여하지 않았다.

1830년대 이후 아일랜드에서 대규모 인구 유입이 있었지만 대부분 미숙련 노동자인 이들이 정착한 곳은 공장지대가 아닌 농촌이었다.

광산이나 토건업에 취업한 아일랜드 이민은 소수였다.

물론 이주민 때문에 상대적 인구 과잉 상태가 돼 값싼 노동이 유지되는 면은 있었다.

산업혁명 기간에 노동 시간이 늘어났다는 게 통설이다.

얼마나 늘었는지에 관해 당시 재판기록을 이용한 추정이 최근에 이루어졌다.

범죄는 아무 때나 일어나므로 범죄 발생일과 그 전날 용의자와 증인의 기상 출근 식사 퇴근 취침 등의 행적으로 노동시간을 유추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성인 남성의 노동시간은 대폭 증가했다(1750년 런던에서 연간 2631시간,1800년 3538시간,1760년 잉글랜드에서 2576시간,1800년 3328시간,1830년 3356시간). 그렇다면 노동생산성 증가 추계는 하향 조정돼야 할 것이다.

여가를 고려할 때 생활수준은 그만큼 낮아졌다.

산업노동 공급은 양적이라기보다는 질적인 문제,즉 노동의 본질적 변화라는 면을 봐야 한다.

이것은 작업장 노동이나 농촌선대제 방식의 노동에서 시간관념과 규율이 강제되는 근대적 공장노동으로의 변화를 고찰하는 것이다.

이 과정의 진행은 결코 순조롭지 않았다.

선대제공업이란 농촌 유휴노동력에 원료와 도구를 대여해 제품을 만들게 하고 일정 기간 이후 이를 회수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의 가장 큰 약점이 바로 노동 과정의 통제였다.

산업혁명기에 선대제로는 더 이상 대량생산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노동자를 한곳에 모아 과업별 감독을 시행하고 규율을 강제하는 공장생산제도가 성립했다.

공장제의 본질은 기계화 자체라기보다 결국 규율이자 노동을 지휘하고 통제하는 것이다.

공장으로 일터를 옮기는 데 18세기 후반 작업장의 장인이나 농촌의 가내수공업자는 극력 저항했다.

산업혁명 전까지 인류는 자연과 조화된 불규칙한 생활리듬에 오래 익숙해 있던 터라 경영자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노동자에게 시간 엄수와 능률적인 작업수행에 대한 인식을 주입시키는 것이었다.

수십년에 걸친 회유와 강제가 따랐다.

선대제에서 맡긴 일감 회수와 다음번 일의 재료 보급은 대개 토요일 저녁 이루어졌다.

그래서 가내수공업자들은 목,금요일까지 부랴부랴 일한 다음 주말에는 음주와 향락으로 지새웠다.

이 여파로 월요일이 되어도 일을 시작하려 들지 않았다(성 월요일).동일한 시간에 상호 조정된 규칙적 노동이 필요한 공장에서는 이처럼 불규칙한 노동리듬 제거가 중요했다.

공장주는 노동자에게 시간관념을 불어넣기 위해 종교적 계몽과 교화,공장에서 각종 금전적 신체적 강제 등을 행사했다.

이에 노동자는 기계파괴,태업으로 저항했다.

그러나 세대가 교체되면서 이러한 저항도 규칙적 노동리듬의 한계 내에서 노동시간 단축,시간외 작업수당 요구 운동으로 변모한다.

즉 토요일 오전근무,하루 10시간 노동 등이 주창되면서 '성 월요일' 관습은 서서히 자취를 감춘다.

하지만 1766∼1876년 버밍햄 사람들의 일기에 이 관습의 흔적은 19세기 후반까지도 남아 있다.

버밍햄,브리스톨,블랙번,맨체스터의 교구교회 혼인기록을 다룬 최근 연구에 따르면 월요일에 결혼식을 올리는 비율이 20세기 초까지도 높게 유지되었다.

이와 같이 아마도 충동적으로 일하는 것이 본능인 인류에게서 정확하고 능률적인 산업노동자 계층을 형성하는 일은 여러 세대에 걸쳐 이루어졌다.

실제 당시 노동자가 공장 취업을 군대나 감옥에 가는 것처럼 여겼다는 기록이 많다.

그러나 공장제의 궁극적 성패는 기술 진보를 수반했는가에 달려 있고,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취득하기 위해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노동 규율에 동참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또한 미국에 비해 영국 노동자가 공장 규율에 늦게 적응한 것을 영국 농업노동의 계절성이 더 심했기 때문으로 보기도 한다.

프로이센(독일) 같은 후발 공업국에서는 동부에서 해방된 농노가 산업노동자층을 형성했다.

저개발국의 공업화에서는 농촌과잉 인구가 도시노동 시장을 지속적으로 압박하는 요인이었다.

오늘날은 서비스업 부문의 확장과 정보기술(IT)의 전파로 자율적 시간선택,재택근무 등이 늘면서 다시 노동 리듬이 달라지고 있다.

노동의 양상과 입지의 변모가 파동의 주기를 채운 느낌이다.

서울대 경제학 dyang@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