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규 삼성전자 사장이 26일 '퓨전 기술(FT)'의 시대가 도래할 것을 예고하며 반도체 업계에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1990년대 이후 세계 정보기술(IT) 호황을 이끌어 왔던 반도체가 앞으로는 에너지 의료 생명공학 등 모든 산업 영역에 쓰이리라는 것.
SF 영화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일들이 첨단 반도체 기술의 발달로 현실화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업계는 그동안 '황(黃)의 법칙'으로 반도체 기술 발전을 정확히 전망해 왔던 황 사장이 이번에도 이 같은 예측을 현실화할 수 있을 것인가에 주목하고 있다.
○반도체의 새 장(章) 열리나
1990년대 들어 PC를 시작으로 IT 산업이 급성장한 배경에는 반도체 기술의 발달이 있었다.
1995년 이후 5년간 이어졌던 PC 산업 호황,2000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모바일 혁명 등은 모두 D램과 낸드플래시,중앙처리장치(CPU) 등의 기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특히 지난해 이후 시작된 컨버전스(기능 융·복합) 추세는 전통적인 IT 제품에 대한 개념을 무너뜨렸다.
이 같은 IT 영역에서의 컨버전스 추세는 이제 'FT시대 도래'라는 황 사장의 예견으로 모든 산업 영역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황 사장은 이와 관련,"매년 반도체 집적도는 두 배씩 성장하고 있으며 기술의 발전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며 "어떤 방향으로 어떤 기술이 나오게 될지 아무도 모를 정도로 반도체의 진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황 사장은 2015년이면 20테라바이트(TB)짜리 초고용량 메모리카드가 나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 향후 5∼10년 내에 지금의 70∼90나노(nano)보다 정교하고 미세한 회로를 만들 수 있는 10나노 공정도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10나노는 원자의 20배 정도에 불과한 크기다.
○어떤 반도체 등장할까
황 사장이 FT 시대에 나타날 미래 반도체로 예를 든 제품들은 대부분 개발 중이거나 구상 단계에 있는 제품들이다.
그가 제시한 미래형 반도체는 크게 의료와 생명과학 에너지 등의 분야에 쓰이는 반도체들이다.
우선 '랩 온 어 칩(LAB On a Chip)'은 반도체 안에 메모리와 로직 회로,소프트웨어를 동시에 탑재한 제품이다.
현재의 반도체가 한두 가지 기능을 수행하는 것과 달리 그 자체로 생각하고 분석하고 판단할 수 있는 칩인 셈이다.
플래시 메모리와 바이오 센서를 장착한 캡슐 모양의 칩도 황 사장이 꼽은 미래형 반도체다.
이 칩을 몸 안에 직접 투입하면 외과 수술을 하지 않고서도 암 등의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아울러 조그만 반도체 칩을 통해 태양열을 이용,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친환경 전력반도체도 미래에 나올 것으로 전망했다.
끝으로 황 사장은 2030년께면 칩 속에 고용량 메모리와 CPU를 장착,인간의 뇌와 같은 기능을 할 수 있는 반도체도 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