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혜석 열린우리당 의원은 최근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서 '우울한' 자료를 공개했다.

1995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11년 동안 우리나라 기업이 휴대전화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원천기술을 가진 미국 퀄컴사에 지불한 로열티가 3조원을 넘는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따르면 삼성전자 등 주요 국내 휴대전화 단말기 제조업체들이 퀄컴에 내는 휴대전화 1대당 로열티는 내수용의 경우 판매가격의 5.25%,수출용은 판매가격의 5.75%다.

국내에서 30만원짜리 휴대전화 1대를 팔 경우 이 가운데 1만5750원이 고스란히 퀄컴사에 떨어지는 셈이다.

그 결과 국내 업체들은 지난 한해에만 퀄컴에 4억6724만달러(약 4300억원)의 로열티를 지불했다.

1990년대 초만 해도 조그만 사무실에 입주한 일개 벤처기업에 불과했던 퀄컴은 이 같은 막대한 로열티 수입으로 오늘날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21세기 글로벌 기술경쟁시대에서 특허가 가진 위력을 잘 나타내주는 대목이다.

◆컴퓨터에서 딸기까지 파고드는 특허의 위력

세계 '특허전쟁'이 가열되고 있다.

21세기 국부의 원천으로 떠오른 특허기술을 선점하기 위한 세계 각국의 경쟁이 치열하다.

뉴스위크에 따르면 197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 500대 기업의 토지,제품재고 등 유형자산과 특허 등 무형자산의 비율은 8 대 2였지만 90년대 말 이후부터는 3 대 7로 완전히 역전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허를 가진 자가 세계 경제를 지배한다'는 말이 이제 맞아떨어지고 있는 시대가 된 것.특허는 천문학적인 부가가치를 만들어낸다.

세계 최대 컴퓨터 업체이자 미국 특허 등록 1위 기업인 IBM은 로열티 수입이 1조원을 넘는다.

IBM이 가진 3만8000여건의 특허는 이 회사의 가장 강력한 무기로 꼽힌다.

일본 소니도 로열티로만 한해 4000억원 이상을 벌어들이고 있다.

특허는 정보기술(IT) 등 첨단기술 분야뿐만 아니라 모든 경제분야로 파고들어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하다 못 해 앞으로는 딸기를 먹으려고 해도 특허료를 지불해야 할 판이다.

한국 정부가 2002년 1월 세계 100여개 국가로 구성된 국제식물신품종보호동맹(UPOV)에 가입한 이후로 일본과 딸기에 대한 로열티 협상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딸기의 87%가 일본산인데 UPOV에 가입한 국가는 2009년까지 모든 작물을 품종보호대상으로 지정해 품종개발자에게 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

농림수산부에 따르면 국내에서 기르는 일본산 딸기 종묘는 6억개.1그루에 10원씩만 쳐도 무려 60억원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 국제특허 일본의 5분의1 수준

한국은 아직까지 반도체 등 일부 분야를 제외하고는 선진국에 비해 특허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허청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지난해 출원한 국제특허(PCT)는 4747건으로 미국(4만5111건)의 10분의1,일본(2만5145건)의 5분의1 수준에 불과했다.

특히 CDMA의 사례에서 보듯 질적인 측면에서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원천 특허기술이 부족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은 만성적인 기술무역수지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기술무역수지 동향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04년 기술수출액은 14억1600만달러인 데 비해 수입액은 41억4700만달러로 27억3100만달러의 기술무역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일본은 수출 163억5400만달러,수입 52억4700만달러로 수출이 수입의 3.12배에 달했다.

한국은 중국 등 후발주자들의 기술추격에도 직면해 있다.

특허청에 따르면 중국은 우리나라가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는 조선 분야에서 2003년 576건의 특허를 출원,같은 기간 345건인 한국의 특허출원을 크게 앞섰다.

이는 비록 기술의 질적인 측면이 반영되지 않은 것이기는 하지만 중국의 지식재산권 역사가 짧은 점을 고려해 볼 때 무서운 속도로 기술성장을 일궈내고 있는 증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삼성전자 특허전담 최고책임자 체제 가동

세계적으로 특허경쟁이 가열되면서 국내 기업들도 특허경쟁력 강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월 국내 최초로 특허전담 최고책임자(CPO) 체제를 본격 가동했다.

CPO는 특허전략의 수립과 실행,전문인력 양성,특허품질제고 등 특허경영업무 전반을 맡고 있다.

또 사업부간 특허 관련 의사결정을 조정해 외부상황에 신속하게 대처토록 하는 특허 부문의 컨트롤 타워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와 함께 2007년까지 특허등록 세계 톱3를 목표로 현재 250명 수준인 특허전담 인력을 2010년까지 450명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LG전자도 변리사 등 특허전문 인력을 현재 150명에서 2007년까지 250명으로 대폭 늘리기로 했다.

이를 위해 미국과 중국 일본 유럽 등 특허거점을 구축해 지역전문가를 육성하고 특허개발,소송 등 업무별 전문가를 키울 계획이다.

정부도 특허청이 특허관련 동향 및 데이터를 수집·분석해 기업에 미래의 특허분쟁 가능성을 미리 알려주는 특허분쟁 예보시스템을 도입키로 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들의 특허공세를 막아내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홍장원 하나국제특허법률사무소 변리사는 "일본 기업들은 특허 등 지식재산권 담당 전문인력만 10만명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며 "국내 기업들이 특허에 대한 투자를 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