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변호인측이 27일 법원에 구속영장실질심사 연기를 요청했지만 법원이 허가하지 않은 것은 `원칙대로' 사건을 판단해 최대한 빨리 심사하겠다는 의지에 따른 것이다.

정 회장측이 실질심사를 연기할 수 있는 나름대로 요건을 갖췄음에도 법원이 이를 단호히 거부한 것은 재벌 범죄를 엄단하겠다는 최근 법원의 기류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형사소송규칙에 따르면 피의자의 심문기일은 구속영장 청구서가 접수된 후 가능한 한 빨리 지정해야 하며 정 회장처럼 미체포 피의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규칙상 구속영장이 청구된 피의자측이 실질심사 연기를 요청할 수 있는 때는 변호인이 뒤늦게 사건을 수임해 변론준비 시간이 부족하거나 심문 기일과 장소 통지에 문제가 있을 때 등 예외적인 경우로 제한된다.

또 변호인의 변론권 보장을 위해 심문기일 연기를 요청할 경우 제한적인 허용이 가능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원칙적으로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심문기일의 연기나 변경은 불가능하다는 게 법조계의 지배적 의견이다.

정 회장측의 경우 `불구속 필요성'을 소명할 자료를 충분히 준비하기에 다소 여유가 없다는 점을 실질심사 연기요청 사유로 들고 있어 형식상 요건은 갖추고 있다.

그러나 한달여 전 검찰의 압수수색 등으로 현대차 수사가 표면화된 때부터 총수의 사법처리 가능성이 점쳐졌고 정 회장의 출국부터 소환까지 구속 가능성은 끊임없이 제기돼 `시간이 없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결국 법원은 27일 오후 신청된 변호인측의 실질심사 요청을 단호히 기각하고 재벌 총수라고 해도 명분이 약한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와 관련해 28일 영장실질심사에서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도 주목된다.

법원 안팎에서는 정 회장이 무리한 경영권 세습을 위해 대형 비리를 저질렀다는 점을 들어 `원칙대로' 구속해야 한다는 의견과 국내 2위의 재벌 총수를 구속할 경우 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들어 기각해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정 회장 변호인단은 구속시 현대차그룹의 대외신인도 하락과 법원의 `불구속 재판 확대' 방침 등을 들어 `구속 불가' 논리를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같은 고민을 한 검찰이 고심 끝에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한다는 방침 하에 구속영장을 청구한 만큼 법원도 철저히 원칙에 입각해 판단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단 법원과 검찰 안팎에서는 원칙대로 판단하면 정 회장의 혐의 사실은 구속영장 발부 사유가 된다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형사소송법 70조는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는 점을 구속 사유로 들면서 이에 더해 일정한 주거가 없는 때,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때,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에 해당할 경우 구속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변호인측은 `재벌 총수로서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또 다른 관건은 죄가 있다고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으면 구속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서울중앙지법은 올 초 인신구속 방침을 공개할 때 `범죄 혐의에 대한 상당한 소명'을 구속영장 발부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언급하며 "현행 형사소송법이 구속제도를 두고 있으므로 구속사유가 인정돼 구속하는 경우 불구속 재판의 원칙과 무죄추정의 원칙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또 최근 서울고법이 회삿돈 219억여원을 빼돌려 기소된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에게 항소심에서도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한 점 등을 볼 때 비자금 1천억원 조성 및 3천억원대의 배임 행위를 한 정 회장의 형량은 가볍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결국 정 회장 구속 여부는 검찰이 법원이 수긍할 수 있을 정도의 개연성을 갖고 범죄 혐의를 주장할 수 있는지, 이를 뒷받침할 소명자료를 갖고 있는지가 관건이다.

이종석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부장판사는 "신중하게 판단하겠다.

법원 입장에서는 기록을 보고 판단할 뿐이다"며 `원칙론'을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임주영 안 희 기자 zoo@yna.co.krprayer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