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의 선두주자이자 최초로 산업자본주의를 일으킨 영국은 20세기까지 가족자본경영이 지속됐다.

영국에서도 19세기 말 생산기술발달로 규모의 경제를 누리는 산업이 등장하면서 기계,화학,전기,자동차 부문에서 대기업이 출현했다.

그러나 당시 영국은 국내시장이 잘 발달된 터라 제조업이 유통부문에 진출할 여지나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기업대형화도 제조업체가 주도하는 수직통합없이 제조업부문 내에서 이루어졌다.

영국은 미국과 달리 철도산업이 국내 시장 확대에 별로 기여하지 못했다.

국내 시장이 이미 도시화된 밀집 형태였고 해외 시장은 너무 멀었다.

그런 만큼 기업대형화가 제한되고 이에 소요되는 자금규모도 크지 않았다.

산업혁명 때부터의 전통대로 사내 유보이윤을 재투자하거나 시중은행 융자금으로 충당하는 정도였다.

영국의 대기업은 절대적 규모도 작았다.

영국 내 순위 50위 기업 규모가 미국 내 순위 200위에 미치지 못했다.

전통적 소유경영 방식을 고수한 영국기업의 대주주들은 자금이 필요할 때 경영권 침해위협이 없는 은행자금을 필요한 만큼 받으면서 지분율을 계속 높게 유지했다.

미국에 비해 영국기업은 소유가 개인 대주주에게 편중됐다.

1975년에도 영국 내 250대 기업의 56.23%가 소유주가 경영하는 소유경영체제(이사진 및 가족소유지분 5%이상)였다.

이들이 기업규모 확대에 적극적이지 않아 경영업무의 분화,전문화는 미미했다.

기술,경영교육에 소홀한 영국교육풍조도 이에 일조했다.

세 방향(제조,유통,경영) 투자를 강화해 여러 업종에 맹렬히 뛰어든 미국 대기업은 막강한 경영조직을 앞세워 해외시장에서 선점의 이익을 확보했다.

이에 실패한 영국기업은 해외는 물론 국내시장에서조차 미국기업에 밀렸다.

예컨대 재봉틀 같은 경기계 부문에서 영국기업은 미국기업에 한번도 맞서지 못했다.

영국기업은 세 방향 투자를 추진하지 못했고 투자할 수 있는 기간도 짧았다.

타국 기업이 일단 영국시장에 진출해 판매조직,생산설비에 직접 투자하자 영국기업에는 기회의 문이 닫혀버렸다.

제조업에서 눈을 돌려 해운,금융 등 서비스부문을 보면 영국은 17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세계경제의 중심역할을 잃지 않았다.

이 부문이 해외팽창을 주도했고 국내에서도 정치력이 컸다.

식민지,영연방,영국의 간접영향권인 남미,중동,중국 등에서 벌어들이는 상업이윤,해운수입,금융수수료의 중요성은 제조업 제품 수출소득보다 컸다.

특히 영국의 자본수출은 1870∼1914년 간 국내총저축의 3분의 1에 달했고 1913년 국부의 3분의 1이 해외자산이었으므로 국제투자수익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영국의 해외팽창은 제조업 대기업보다 서비스부문,금융업의 국내사정과 관련된 면이 더 크다.

'독점자본이 이윤율저하를 초래하여 수익성이 높은 곳을 찾아 해외로 팽창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의 마지막 단계요 자본주의가 말라죽어가는 국면'이라는 레닌의 주장은 역사적 근거가 없다.

미국과 독일에서 독점자본(대기업)이 형성될 때 영국은 아직 독점자본이 나타나지 않았고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이 분리되어 존재했으며 소규모 가족자본이 기업자금의 주류였다.

하지만 전형적으로 제국주의를 추구한 나라는 영국이다.

당시 영국의 국내 설비투자와 해외 투자 패턴은 마치 거울 이미지처럼 반비례하는 모습을 보였다(그림).국내의 투자수익률이 지속적으로 저하한 것이 아니라 해외투자수익률과 국내수익률의 비율이 주기적 순환을 보였다는 뜻이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구미 선진국경제는 고사상태가 아니었다.

시장확대와 기술혁신으로 자본주의가 한 단계 더 높아지는 상황이었다.

한편 소규모 단일기업이 시장을 통해 수행하던 자원배분을 식품,철강,기계,석유,화학,전기,자동차 부문에서 수직결합한 대기업이 맡는 과정을 필연적 귀결이라고 할 수는 없다.

요즘 기업분할,공장폐쇄,투자감축,기업인수합병,공기업 민영화,벤처캐피털의 만발 등은 시장환경,기술특성에 따라 산업구조가 역사적으로 다양하게 적응함을 보여준다.

1912년 세계 100대 기업에 포함된 미국기업 54개 중 1995년까지 100대 기업으로 살아남은 기업은 17개뿐이다.

대기업이 1970년대 후반 이후 경제환경변화에 신축적으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소비수요가 고품질화,개성화되면 수직결합해 대량생산할 요인이 사라지고 아웃소싱이 더 효율적이다.

이 때는 경직된 비관련 다품종 대기업(conglomerate)이 가장 먼저 타격을 입었다.

기업이 다각화,수직결합에서 철수하고 전문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자원배분의 주체는 경제환경에 따라 나라별,산업별로 시장과 대기업을 양극에 둔 스펙트럼 안에서 움직인다.

지난 150년간에는 대기업 쪽으로 수렴했다.

최근에는 시장 쪽으로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서울대 경제학 dyang@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