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떻게 하면 자기 조직이 망할지 얘기해 보라는 게 유행인 모양이다. 일류회사 CEO들이 직원들에게 위기의식을 일깨우는데 활용했던 것이 정부 부문에서도 원용되고 있다. 경상남도에 이어 산자부 공무원들이 몸담고 있는 조직이 망하는 방법에 대해 솔직한 얘기들을 쏟아냈다고 한다. 공통적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은 이벤트성 행사는 이제 그만하자는 것이다. 1990년대 중반쯤인가 보다. 당시 통상산업부 공무원들은 온갖 이벤트성 행사에 넌더리를 쳤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마침내 그 속내를 공개적으로 털어놓은 것이다. 이벤트로 말하자면 어디 산자부뿐이겠는가. 다른 부처들도 하등 다를 게 없다. 그러나 정부가 위기의식을 아무리 느낀다고 한들 기업에 비할 바 아니다. 정부 부처가 망한다고 해도 그것은 실제로 망하는 게 아니다. 통폐합이 되더라도 조직과 사람은 사실상 그대로란 점에서 그렇다. 기업은 다르다. 망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런데 공무원들도 지긋지긋하다는 이벤트성 행사가 지금 재계에서 봇물을 이루고 있다. 날마다 들려오는 게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이고, 사회공헌 활동이다. 다른 때도 아니고 심상치 않은 국제유가, 불안한 환율 동향 등 경영환경으로 보면 기업들이 '전쟁모드'로 전환해도 시원찮을 그런 국면인데도 말이다. 이 모두 청와대가 주도하는 양극화 대책과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 대·중소기업 상생협력과 사회공헌 활동이 잘못됐다는 얘기가 아니다. 문제는 그것이 자발적인 것으로 비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기업도 생명체처럼 진화를 한다. 변화가 필요하면 스스로 변화한다. 정부가 상생협력을 닦달하듯 하지 않아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한편으론 경쟁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론 협력할 수밖에 없다. 국제적인 경쟁환경이 그렇고, 기술혁신 흐름도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오히려 정부가 조급히 성과를 내겠다고 하는 게 문제다. 정말 정부가 서둘러 할 것은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인적·물적 흐름을 가로막는 장애요인들을 걷어내는 것이다. 출자총액제한제 등 대기업에 대한 원천적 규제들은 과감히 풀라는 얘기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부작용이 있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경쟁정책으로 해결해 나갈 일이다. 그리고 산업정책적 차원에서 정부가 나서야 할 일이 있다면 대기업 스스로 손을 내밀 수밖에 없을 정도의 혁신적인 중소기업을 창출하는데 역점을 두는 것이 정도(正道)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문제도 마찬가지다. 선생님이 학생 훈계하듯 정부가 기업들을 몰아갈 성질의 일이 결코 아니다. 사회적 책임이 기업평가나 경쟁력의 중요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면 누구보다 본능적으로 그런 흐름에 재빠르게 반응하고 나설 것은 바로 기업들이다. 실제로 국내에서 글로벌 기업들이 나오면서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도 덩달아 높아졌고, 나라 안팎에서 기업의 사회적 공헌활동도 크게 늘었다. 이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색한 평가가 오히려 문제다. 사회적 책임도 기업의 성장과정을 자연스럽게 따라간다. 상생협력도 좋고, 사회적 책임도 좋다. 그러나 자체적인 메커니즘 진화에 따른 것이 아니라 외부적 충격을 가하는 식이 돼선, 다시 말해 기업의 자발적 동기에 의하지 않는 한 그건 규제나 다름없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