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와 계열사인 글로비스에 대한 대검 중수부의 전격적인 압수수색 소식이 알려지자 재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특히 김재록씨가 DJ 정부 시절 금융계의 마당발로 불리며 기업구조조정 과정에 깊숙이 관여한 인물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번 검찰 수사가 현대·기아차그룹에 그치지 않고 다른 기업으로까지 확산될 수도 있다며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이날 압수수색은 현대·기아차가 글로비스를 통해 조성한 비자금 중 수십억원이 김씨에게 흘러들어간 정황에 대한 관련 증거 확보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게 검찰의 공식 발표다. 검찰은 또 이날 압수수색이 현대차의 기아차 인수과정이나 후계구도와는 무관하다고 강조한 뒤 김씨의 로비와 관련한 부분에 무게를 뒀다. 그러나 재계는 검찰의 압수수색이 김씨 구속 이틀 만에,그것도 휴일 오전을 택해 단행된 점을 상당히 이례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게다가 김씨의 로비와 관련된 사항이라면 관계자 소환 등을 통해 수사할 수도 있는데,본사와 특정 계열사를 전격 압수수색한 것은 예사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그래서인지 재계 일부에서는 이번 현대차 압수수색이 단순한 로비의혹 수사 차원이 아니라 다목적용일 수도 있다며 배경 파악에 분주하다. 재계 관계자는 "압수수색 강도가 로비의혹 규명 차원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하다"며 "특히 그동안 정의선 기아차 사장의 그룹 후계구도와 관련해 시민단체 등의 공격을 받아온 글로비스에 대한 압수수색도 함께 이뤄졌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재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이번 압수수색이 김씨 로비의혹에 한정된 것이겠지만 대기업의 양극화 해소 동참을 요구하고 있는 참여정부가 삼성에 이어 현대차에 간접적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기업들은 다만 이번 수사가 과거처럼 정치적인 목적을 띤 기획성 수사는 아닐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세상이 달라졌기 때문에 선거를 앞둔 기업 옥죄기는 아닐 것"이라며 "하지만 수사가 장기화된다면 결과적으로 기업들의 경영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금융권도 김재록 파문의 불똥이 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김씨가 전·현직 금융계 CEO를 비롯 상당수 금융계 고위 인사들과 친분을 맺고 있는 데다 일부 금융회사들은 대출 등에도 연관돼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김씨가 외환은행 M&A(인수·합병)에도 관여했다는 루머까지 금융계에 나돌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국민은행과 하나금융 관계자들은 "그 같은 소문은 전혀 사실 무근"이라고 일축했다. 금융계는 김씨가 여러 금융계 고위 인사와 교류해온 점을 감안하면 검찰 수사과정에서 금융계 고위인사들이 직·간접적으로 조사받을 수도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