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은행들은 2차 대전 후 갓 태어난 신생 교토기업들에 섣불리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 1970년대 들어서도 통상산업부가 주도한 정책자금이 반도체 컴퓨터 소프트웨어 등을 만드는 NEC 후지쓰 히타치 등에 집중돼 교토 기업들에 돌아가는 몫은 거의 없었다. 자금이 넉넉지 못한 상황에서 교토 기업이 살 길은 특정사업에 주력,세계 1위가 되는 것 뿐이었다. 무차입 경영관행은 생존을 위한 투쟁의 산물이었다. ◆무차입 경영하는 니치콘 1950년 설립 이후 콘덴서 등 전자부품을 주력 생산해 온 니치콘은 사실상 빚이 없다. 창사 이래 은행에 아쉬운 소리를 한적이 없다. 현금이나 유가증권 등 보유하고 있는 금융자산 대비 장단기 차입금 비중이 1% 미만이다. 회사 외형이 커지는 상황에서 차입금이 없다는 것은 한마디로 현금흐름을 중시하는 경영을 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일정 기간에 현금이 유입되는 규모를 따져 지출계획을 수립함으로써 차입의 여지를 없애는 것이다. 니치콘 역시 30년 전부터 한결같이 현금 흐름 위주의 내실경영을 고집해 왔다고 호시모토 히로오 투자설명(IR)실 과장은 설명했다. 이를 위해선 사업을 다각화하지 않고 철저히 특화된 기술로 승부를 걸어야 했다. 니치콘은 2005회계연도 매출이 1040억엔에 달하지만 56년 째 콘덴서만을 생산하고 있다. 국내 14개 공장과 해외 3개 공장에서도 콘덴서만을 생산한다. 공급 대상기업도 일본 내 600개 회사를 포함해 전 세계 2000여개사에 달한다. ◆과감한 투자로 역량 강화 니치콘의 무차입 경영이 결코 수세적 축소경영을 의미하진 않는다. 외부 차입이 없을 정도로 재무구조가 튼튼하기 때문에 기회가 오면 주저없이 투자할 수 있는 역량이 다른 어떤 기업보다 강하다. 실제로 니치콘은 무차입 경영에 힘입어 1998년 과감한 투자를 단행해 회사가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다케다 이페이 사장은 1998년 사장에 취임하자 마자 전례없는 대규모 투자 계획을 세운다. 알루미늄 전해콘덴서의 원료를 안정적으로 조달하기 위해 알루미늄 전극박 공장을 건설하기로 방침을 세운 것이다. 투자계획을 발표하자 기관투자가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경기가 좋지 않아 매출 및 이익을 거둔다고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거액(230억엔)을 투자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논리였다. 어떤 투자가는 사장실에 찾아와 다케다 사장에게 각종 수치를 제시하며 자본비용에 대해 공부를 할 것을 주문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다케다 사장은 "투자의 필요성을 납득시키기가 쉽지 않았다"며 "그래서 '나는 국민학교밖에 나오지 않아서 자본비용 같은 건 모른다'는 핑계를 대고 밀어붙였다"고 설명했다. 그 당시 가장 큰 힘이 됐던 게 바로 내부 유보금이었다. 원재료를 제때 공급받지 못하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어 차입 없이 회사 유보금으로 투자한다는 회사측 논리를 꺾긴 어려운 상황이었다. 나가노현과 후쿠이현에 세운 알루미늄 공장은 몇 년 지나지 않아 효자노릇을 했다. 일관생산체제를 구축한 덕에 니치콘은 가격 경쟁력을 갖게 됐다. 그 결과 하이브리드에 들어가는 전해콘덴서 세계 시장을 석권했으며 에어컨 냉장고 등의 열조절 장치 역할을 하는 인버터용 콘덴서 시장의 80%를 차지했다. 무차입 경영이 없었으면 투자는 불가능했고 투자가 없었으면 '콘덴서 세계 1위 니치콘'도 없었을 것이다. 교토=이익원 기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