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의 독립성과 위상을 높이기 위해 가장 몸부림친 총재로 기억되고 싶다."


이달 말로 임기가 끝나는 박승 한국은행 총재는 22일 퇴임 기자간담회에서 "어떤 한국은행 총재로 기억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이 같은 소망을 피력했다.


4년 재임기간 동안 가장 보람 있었던 일 중 하나가 "한국은행의 독립성을 세계 중앙은행의 중(中)·상(上) 정도 수준으로 높인 점"이라고 스스로 평가하면서도 그 과정이 쉽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박 총재는 특히 "한은의 독립성이 과거보다 높아지긴 했지만 갈 길이 멀다"며 "이를 위해서는 중앙은행을 대하는 정부와 국회의 자세 뿐 아니라 국민들의 시각도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장 아쉬운 점으로는 "화폐개혁과 관련된 세 가지 과제(화폐액면단위변경,화폐 디자인 변경,고액권발행) 중에서 한 가지(화폐디자인 변경)밖에 못 이뤄 낙제점을 받은 게 가장 서운하다"고 밝혔다.


박 총재는 이어 "우리 경제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사심없이 고뇌한 총재로 기억되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저금리를 너무 오랫동안 방치해 부동산 가격 급등을 부추겼다'는 지적에 대한 답변에서는 박 총재 특유의 거침없는 달변이 쏟아졌다.


박 총재는 우선 "우리도 그 문제를 참 많이 고뇌했다"고 털어봤다.


박 총재는 하지만 "부동산 문제는 세제나 금융만 가지고는 해결하기 힘들다"며 "교육제도를 포함한 범국가적인 사회 대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나 "이 같은 개혁에는 수많은 저항이 있을 수 있기에 과연 정부가 그걸 뚫고 개혁을 이뤄낼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최근 출자총액제한이나 금융자본과 산업자본 간 분리를 완화해야 한다는 소신을 피력한 데 대해서는 "개방화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과거의 필요에 의해 여기저기에 쳐 놓은 '칸막이'는 제거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올해로 칠순에 들어선 박 총재는 한국은행 조사역으로 출발해 청와대 경제수석,건설교통부 장관,중앙대 교수 등을 두루 역임,관운을 타고났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런 화려한 경력 때문인지 퇴임 후 계획에 대해서는 "공인(公人)으로서 성취감을 느끼는 것도 좋지만 사인(私人)으로서 조용한 생활을 하는 것도 또한 큰 보람"이라며 일체의 공식 활동을 자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