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내 이름은 조치훈'


이창호 이세돌 최철한 등 20~30대 젊은 기사들이 반상을 지배하면서 '조치훈'이라는 이름 석 자는 어느 새 잊혀진 고유명사가 됐다.


'목숨을 걸고 바둑 둔다'는 '투혼바둑'으로 1980년대 일본 바둑계를 평정했던 조치훈 9단(50).그가 최근 부활의 날갯짓을 펼치고 있다.


무대는 일본의 랭킹 4위 기전이자 조9단이 유일하게 보유 중인 타이틀인 10단전.


올해 도전자는 일본이 주목하는 차세대 주자 야마시타 게이고 9단(27).얼마 전 하네 나오키 9단으로부터 기성(棋聖)타이틀을 쟁취,명실상부한 일본랭킹 1위로 오른 강자다.


야마시타9단은 첫수를 화점보다 위(5·5)에 두는 등 공격적이고 파격적인 기풍으로 젊은층에 인기가 높다.


지난 8일 결승1국이 열리기 전까지만 해도 조9단의 열세를 점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대국 전까지 야마시타9단은 조9단과의 상대전적에서 9승3패의 절대우위를 보이며 '천적'으로 군림하고 있었기 때문.


하지만 막상 뚜껑이 열리자 조9단은 여전히 죽지 않았음을 실력으로 보여주었다.


백을 쥔 그는 패기 넘치는 도전자를 맞아 하변과 우변에 대가를 형성하며 시종 국면을 주도해 나갔다.


종반에 접어들어 조9단은 상변의 패싸움을 해소하며 흑 10점까지 잡아들여 실리차이를 더욱 벌여나갔다.


결국 야마시타9단은 224수 만에 항서를 쓰고 말았다.


1962년 6살 코흘리개 때 외조부인 조남철9단의 손을 잡고 현해탄을 건넜던 조치훈.오는 6월이면 그도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다.


2003년 12월 벌어졌던 박영훈9단과의 삼성화재배 결승 마지막 대국에서 불리했던 바둑을 기적적으로 역전시키고 우승컵을 안은 뒤 '지나고 보면 승부는 모두가 운명'이라는 철학적인 말을 던졌던 그.그의 말대로 승부는 운명일지 아니면 또 다른 그 무엇일지 오는 27일 벌어질 2국의 결과가 기다려진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