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 시장에 봄바람이 불고 있다.


1999년 대우사태 이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던 국내 투기채권 시장이 최근 다시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국내 자산운용사들은 투기 등급(신용등급 BB+ 이하) 또는 신용등급을 받지 않은 무등급 기업들이 발행한 전환사채(CB)·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에 투자하는 펀드를 조성,잇따라 투기채 투자에 나서고 있다.


이들 투기채는 리스크가 크면서도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일종의 하이일드 채권인 셈이다.


이를 계기로 투자 적격(신용등급 BBB- 이상) 안전채권만 선호되고 투기등급 등 하이일드 채권은 철저히 외면당해 왔던 채권 시장의 극심한 양극화 현상이 완화되면서 저신용도 기업의 자금 조달에 다소나마 숨통이 트이고 있다.



◆투기채권 투자 재개


14일 자산운용업계와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알파에셋자산운용은 최근 사모펀드를 통해 코스닥 상장 기업인 알덱스와 반포텍의 CB와 BW를 매입했다.


KIS채권평가에 의하면 알덱스의 경우 기업어음(CP) 등급이 B등급으로 투기 등급이고 반포텍은 신용등급이 없는 기업이다.


KB자산운용도 지난달 초 200억원 규모의 사모펀드를 조성,뉴인텍 등 신용등급이 낮거나 없는 코스닥 기업이 발행한 CB 등에 투자했다.


앞서 KTB자산운용은 지난해 9월 사모펀드를 통해 케드콤 한광 등 11개 투기등급 기업이 발행한 채권을 신주인수권과 함께 투자하는 방식으로 매입했다.


최근 들어선 기관투자가는 물론 일반인의 자금을 모은 공모펀드를 통해 하이일드채권 투자를 추진하는 자산운용사도 등장했다.


우리자산운용 관계자는 "이르면 다음 달 중 기관과 일반 투자자 돈을 모아 투기등급 채권에 투자하는 공모 혼합형 펀드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저신용도 기업 자금조달 숨통


1999년 대우 사태,2003년 SK글로벌 사건과 LG카드 사태 등을 거치면서 국내 채권시장은 양극화 현상을 보여 왔다.


투자적격 회사채의 경우 저금리 시대를 맞아 상대적 고금리 매력이 부각됨에 따라 연기금 등 기관은 물론 개인의 소액 투자가 쇄도하면서 인기를 끌었다.


반면 투기등급 채권은 철저히 외면당했다.


권경업 대한투신운용 채권운용본부장은 "대다수 채권형 펀드의 경우 약관 등에 아예 투자적격 채권에만 투자한다고 명기하는 등 최근 몇 년간 펀드의 투기채권 투자는 사실상 원천적으로 봉쇄돼 왔다"고 설명했다.


임광택 KB자산운용 채권운용본부장은 "하이일드채권 시장이 제 기능을 못하다 보니 미래 성장성이 있지만 재무구조가 나쁜 기업들은 한동안 국내 채권시장에서 자금 조달을 하지 못했다"며 "이에 따라 코스닥 상장사 등 많은 기업들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외국계 펀드를 통해 해외 채권을 발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따라서 최근 몇몇 자산운용사가 투기채에 투자하는 펀드를 출시한 것은 의미가 크다는 지적이다.


다만 최근 재개된 하이일드채권 투자가 모두 CB나 BW 같은 주식연계 채권에 국한돼 있는 점은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비상장 기업이나 초기 창업 기업 등은 여전히 채권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이 불가능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는 얘기다.


임광택 본부장은 "주식연계 채권 이외에 저신용도 기업의 일반 회사채 투자는 국내 채권형펀드의 대형화,기관의 신용분석 능력 제고 등이 필요해 활성화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라고 밝혔다.


이상열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