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과 측근들이 집권 중 자행한 반인륜 범죄 혐의를 단죄하기 위한 재판이 휘청거리고 있다. 이라크 특별재판부는 유죄 입증이 비교적 쉬울 것으로 예상됐던 1982년 두자일 마을 학살 사건을 첫번째 심리대상으로 삼아 지난해 10월19일 재판을 시작했다. 그러나 후세인을 주축으로 한 피고인들은 재판진행에 협조하지 않으면서 법정을 욕설과 고함의 장으로 만들고 있고, 유죄 입증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후세인 정권 인사들은 후세인에 대한 충성심을 보이며 입을 닫고 있다. 이에 따라 세기의 재판으로 관심을 끌었던 후세인 재판은 심리횟수가 쌓일 수록 재판과정과 결과를 둘러싼 논란을 심화시키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후세인 단식 농성 돌입 = 후세인은 14일 재개된 심리에서 출정을 거부하는데도 강제 출석토록 한 재판부의 조치에 항의해 단식투쟁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후세인은 사흘 간 단식했다며 측근들도 단식투쟁에 동참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후세인 정권의 탄압을 받은 피해자인 라우프 라시드 압델 라흐만 주심판사가 불공정한 재판을 진행할 수 있다는 이유로 교체를 요구하며 출정을 거부하자 13일 속개된 재판부터 강제 출석시키고 있다. 후세인과 다른 피고인들이 단식투쟁을 접지 않을 경우 파행이 거듭돼 온 재판에 또다른 악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단식투쟁은 후세인을 지지하는 수니파 저항세력에 동정론을 확산시켜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있는 이라크의 혼란을 부채질할 것으로 분석가들은 보고 있다. ◇고함과 인신공격 난무하는 법정 = 후세인과 다른 피고인들은 미국이 조직한 재판부의 합법성을 부인하며 재판진행에 전혀 협조하지 않고 있다. 피고인들은 심리절차가 TV로 시차를 두고 공개되는 점을 활용해 막말을 쏟아내는 것으로 재판의 파행을 유도하고 있다. 특히 후세인은 재판부에 모욕을 주는 발언을 주도하고 있다. 그는 13일의 심리에서 압델 라흐만 주심판사에게 "법에 무지한 인간"이라고 쏘아붙인데 이어 14일에는 "의사봉으로 당신 머리나 두드려라"는 식의 거친 말을 서슴지 않았다. 후세인의 이복동생으로 정보국장을 지냈던 이브라힘 바르잔 알-티크리티는 재판부를 조롱한다는 의사표시로 이날 속옷 차림으로 출정하면서 "바트당 만세"를 외치기도 했다. ◇후세인 정권 인사들 증언 거부 = 공소유지를 맡고 있는 검찰은 두자일 사건 당시 후세인 정권에 몸담았던 인사들의 객관적 증언이 피고인들의 유죄를 입증하는 결정적 진술을 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13일부터 시작된 관련 증인들에 대한 심리는 증언거부로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13일 증인으로 나온 하산 알-오베이디 전 정보국장과 아흐메드 쿠다이리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 후세인 정권 인사 2명은 자신들의 뜻과 무관하게 강제로 법정에 끌려나왔다고 주장하면서 후세인에 대한 불리한 증언을 거부했다. 또 두자일 사건 당시 구 소련 주재 대사를 지낸 파딜 알-아자위도 14일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아는 것이 없다"며 신문에 응하지 않았다. 검찰은 후세인과 측근들의 유죄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후세인 암살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두자일 주민 140여명이 체포돼 고문당하고 즉결처형되는 과정에 피고인들이 직접 개입했다는 증거를 세워야한다. 그러나 피고인들이 혐의를 강력 부인하고, 피해자들의 일방적인 진술만 있는 상황에서 객관성을 담보해 줄 증인들이 입을 다물어 유죄입증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카이로=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parksj@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