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된 딸이 엄마 활동 격려해줬죠" 정읍여고 졸업 직후 미인대회 수상, 잇따른 대형 광고 모델 캐스팅, 가수 데뷔 음반으로 30만장 판매, 무서울 것 없이 승승장구했던 1980년대 신데렐라 임수정.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졌다'는 말처럼 83년 그의 데뷔곡 '연인들의 이야기'는 드라마 '아내'에서 유지인의 테마로 삽입되며 빅히트, 그 시절 20~30대 남성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당시 언론은 '비디오가 강하고 오디오가 약한 가수', '동서양의 이미지를 겸비했지만 노래의 깊이가 없어 과연 팬들의 사랑을 얼마나 받을까'라고 일침을 놓았지만 그는 '쇼쇼쇼'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젊음의 행진' '가요톱10' '쇼 2000' 등 방송사 쇼프로그램을 종횡무진하며 안방극장을 휘저었다. 85년 2집 타이틀곡 '사슴여인'으로 후속 인기를 노렸으나 '나는 밤 거리에서 꿈을 먹고 사는 사슴 여인'이란 가사가 '직업여성'을 뜻한다며 방송사 심의에서 제재받았다. 가사를 수정해 취입하는 과정에서 유일한 친구였던 어머니가 세상을 떴고, 레코드사 이적 문제가 겹치며 심적으로 방황하던 그는 급기야 모습을 감췄다. 20여년 만에 3집 타이틀곡 '놓칠 수 없는 사랑'으로 돌아온 임수정은 12살된 딸을 둔 40대 중년 여성이 돼 있었다. 그러나 고운 피부, 선한 눈매와 착한 미소는 20여년의 세월에 큰 풍파를 겪지 않은 듯 그대로였다. "82~83년 대한항공 제주 칼(KAL)호텔, 화신소니 원터치 녹음기 등 광고 50여편에 출연하며 가수로 '픽업' 됐어요. '연인들의 이야기' 성공 후 '사슴여인'으로 활동할 즈음, 서라벌레코드에서 다른 회사로의 이적문제, 어머니의 죽음으로 큰 갈등을 겪었습니다. 위로 오빠만 셋이어서 살갑게 조언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재벌, 스타는 하늘이 주는 것이라는데 그 기회를 쓸모없게 만들었죠." 89년 그는 미국으로 건너갔다. 92년 귀국해 93년 11월 결혼했고 이듬해 딸을 낳았다. 외국인중학교에 다닌다는 딸은 가수 인순이의 딸과 동창. "엄마도 가수였잖아요. 내 친구 엄마처럼 직업을 갖고 일했으면 좋겠어요"라는 딸의 격려에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로 산 20여년을 되돌아봤다고 한다. "딸은 제 활동 영상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어요. 언젠가 제가 출연한 광고 사진을 보고도 저인지 모르더군요. 활동하고 싶었지만 제 20대를 기억하는 옛 팬들이 40대가 된 제 모습에 실망할까봐 마음을 접곤했죠. 예전의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었어요. 작년 설운도 씨도 방송사에서 절 못 알아보시더군요."(웃음) 사실 그는 최근에도 TV에 얼굴을 내밀었다. GS홈쇼핑과 롯데리아 CF 등에서 가정주부, 딸을 둔 어머니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또 사업가로도 변신했다. 현재 방송 PPL 대행사이자 음반기획사인 세연 글로벌&커뮤니케이션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이 회사에서 호소력 짙은 발라드곡을 부르는 여가수 등 신인양성에 힘쓰고 싶단다. 엄마의 외모와 끼를 물려받아 학교에서 인기가 많은 그의 딸도 몇몇 연예 관계자들의 러브콜을 받기도 했다. 싱크로나이즈 선수인 딸의 휴대폰 사진을 보여주며 미소지은 임수정은 "재능있는 딸이 하고 싶은 일을 반대할 생각은 없지만 지금은 아니다. 공부를 하고 정신적으로 성숙한 후의 일"이라며 금세 어머니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의 복귀 소식에 가장 기뻐한 이들은 역시 팬. 지금은 싸이월드 미니홈피 하루 방문자가 300여명에 이른다고. 임수정은 "딸 미니홈피의 방문자가 훨씬 많았지만 요즘은 그 경쟁에서 딸을 눌렀다. 모녀의 대화 창구이던 미니홈피가 이젠 팬들과 소통하는 곳으로 바뀌었다"며 "7080세대를 위한 프로그램과 공연 무대에서 옛 팬들과 세상을 노래하며 살아가고 싶다"고 소박한 꿈을 펴 보였다. 이어 "'10년만 젊었다면' '가수의 맥을 끊지 않고 노래했다면' 하는 아쉬움과 욕심은 버렸다. 다시 낸 음반으로 승승장구 할 생각도 없다. 단지 내 노래를 옛 음악 팬들이 기억해주길, 그때 그 사람이 다시 노래하는구나 알아주길 바랄 뿐이다"며 미소지어 보였다.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mim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