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해외 체류 5개월만인 4일 입국함에 따라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편법 증여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과 이 회장의 `악연'이 다시 주목을 끌고 있다. 이 회장은 1997년 대선자금 의혹이 담긴 `안기부 X파일' 사건 수사가 본격화된 작년 9월 4일 신병 치료차 미국으로 떠났기 때문에 수사 과정 내내 그가 검찰 조사를 받게 될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참여연대는 이 회장이 당시 이회창 전 신한국당 총재에게 1997년 대선 직전 수십억대의 정치자금 등을 건넨 의혹이 있다며 특가법상 횡령,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작년 12월 대선자금 사건을 마무리 지으면서 대선자금 제공 혐의는 공소시효가 이미 지났다는 이유로 삼성이 이회창 후보측에 건넨 대선자금의 규모조차 확정짓지 못했고 이 회장은 서면조사만 받고 무혐의 처분됐다. 대검 중수부는 비슷한 무렵 837억원 규모의 삼성 채권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삼성 구조조정본부를 압수수색하지 않고 관련자 진술만으로 채권의 원 자금이 이회장의 개인 돈이라고 결론지어 `봐주기 수사' 논란에 말려들었다. 이 회장과 검찰의 악연이 시작된 것은 1995년 11월 대검 중수부가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을 수사할 때다. 이 회장은 처음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고 김우중 당시 대우그룹 회장 등 6명의 재벌총수와 함께 불구속 기소됐다. 이 회장은 `X파일 사건'이나 `삼성채권' 수사를 비켜갔지만 아직 검찰과 악연을 완전히 정리하지는 못한 상태다. 삼성그룹 후계 구도가 달려 있는 에버랜드 CB 사건 수사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곽노현 방송통신대 교수(현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 등 법학교수 43명은 1999년 12월 에버랜드 이사회가 CB 125만4천여주를 제3자 배정방식으로 이 회장의 장남 재용씨 등 남매에게 배정한 것과 관련, 2000년 6월 이 회장과 에버랜드 주주 등 33명을 특경가법상 배임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1심 재판부는 이 사건으로 기소된 허태학ㆍ박노빈 에버랜드 전ㆍ현직 사장의 유죄를 인정하면서 에버랜드 지배권을 이전하려고 CB를 발행하고 이사회 회의록을 허위 작성하는 등 적법 절차를 지키지 않은 죄가 가볍지 않다며 삼성 오너 일가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검찰은 1심 재판이 마무리된 뒤 삼성 일가의 공모관계를 입증하기 위해 회계법인을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검찰은 압수한 회계자료를 분석하는 데만 3~4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당장 이 회장을 비롯한 핵심 피고발인을 소환 조사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 회장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신분인 점 등을 감안해 출국금지도 고려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다음달이나 늦어도 4월께 회계 분석 작업이 마무리되면 삼성 핵심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가 본격화될 전망이고 이 회장도 소환 조사를 받게될 가능성이 점쳐 지고 있다. 삼성그룹이 직접 관련됐던 X파일, 삼성채권 수사 때 `봐주기 수사'를 했다는 비난으로 곤욕을 치른 검찰이 이번에는 어떤 자세를 취할지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서울=연합뉴스) 이광철 기자 mino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