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0월 강원랜드가 개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서울필텍엔지니어링의 권용석 대표(41)와 직원들은 자정이 가까워 오는 시간 차를 몰고 강원도 정선군 사북리로 급하게 출발했다.


강원랜드에 납품한 3억원어치의 산업용 탈취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식당에서 배출되는 음식 냄새가 도박장과 로비 등을 가득 메운 것.


다행히 작동 실수로 밝혀졌고 제대로 작동하자 냄새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강원랜드에서 입증된 이 회사의 악취제거 기술에 대한 소문은 서울로 전파(?)됐고 현대해상 광화문 사옥,현대자동차 양재동 사옥,63빌딩 등 서울 시내 굵직한 기업체 빌딩에도 속속 설비가 들어갔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탈취 장비가 설치된 후 식당의 음식 냄새가 제거되는 바람에 직원들이 그 날의 점심 메뉴를 미리 맞히는 재미를 잃어 버리게 됐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서울필텍은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서울필텍 설비는 외국산에 비해 40% 정도 값이 저렴할 뿐만 아니라 크기를 절반 정도로 줄여 공사 기간이 짧으면서도 공간을 적게 차지하는 획기적 기술이라는 평가를 받는다고 권 사장은 설명했다.


이 기술은 자외선 특수 램프와 광촉매를 활용해 광화학적 산화 과정을 통해 악취 분자를 분해해 버린다. 이런 첨단 기술을 작은 벤처기업이 개발했을 뿐만 아니라 6년여 만에 수입 설비가 독차지해 오던 시장에서 탄탄한 독자시장 기반을 닦은 데에는 모범적인 산·학 협력이 있었다.


1998년부터 유럽산 탈취 장비를 수입 판매하던 권 사장은 외국 제품에 한계를 느끼고 '자체 개발해 봐야겠다'고 작심한다.


수입 설비는 우선 비쌀 뿐만 아니라 너무 커서 장소를 많이 차지하고 필터 등 소모품이 많아 고객 입장에선 설치 후 운영경비 부담도 만만치 않았다. 이 때문에 시장이 정체돼 있었다.


권 사장은 수입 설비에 대한 기술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야심적인 국산화 계획을 세우고 자금까지 마련했지만 막상 행동에 옮기려니 기술적인 난관이 한둘이 아니었다.


망연자실하고 있던 권씨에게 우연히 '악취제거 연구에 인생을 바친 교수가 있다'는 소문이 들렸다.


"소문을 듣는 순간 천우신조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권 사장은 소문의 주인공인 경기대 환경공학과 홍성창 교수(48)를 수소문 끝에 찾아갔다. 10여년간 대기 오염물질을 제거하기 위한 촉매 연구에 매진해 온 홍 교수는 당시 모 대기업과 손잡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권 사장은 "조금 늦었다"는 홍 교수를 한 달 가까이 거의 매일 찾아간 끝에 마음을 돌려 놓는 데 성공한다. "냄새 산업에 인생을 바치기로 작심했다는 권 사장의 말에 감동했었지요."


홍 교수는 2000년부터 권 사장의 경기도 의왕 공장에서 숙식을 함께하면서 상품화 연구에 몰입한다. 2001년 초 마침내 첫 제품 '포토존(Photo-zone)'이 탄생했다.


국제 특허를 포함해 특허 등록만 4건을 올리는 성과를 냈다.


권 사장은 세일즈 현장의 경험과 소비자 목소리를 연구진에게 시시각각 전달하는 방식으로 개발에 일조해 나갔다.


지속적인 연구개발로 제품은 네 차례나 '업그레이드'됐다.


최근엔 거대 설비가 아닌 화장실이나 방에 간단히 부착할 수 있는 소형 탈취기 개발에 성공,시판을 앞두고 있다.


직원 4명으로 구성된 초미니 회사 서울필텍엔지니어링은 지난해 11억원의 매출을 올린 데 이어 올 들어서는 25억원어치의 선계약을 따냈을 정도로 약진하고 있다.


권 사장과 홍 교수는 6년간 연구개발을 위해 머리를 맞대다 보니 눈빛만 봐도 의중을 알 수 있는 사이다.


그런 데도 둘은 여전히 서로를 깍듯이 '사장님''교수님'으로 부르고 그 흔한 골프 한번 같이 나간 적이 없을 정도로 우직한 스타일들이다. 술도 밤늦게 의왕의 연구실 겸 공장을 나서면서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잔이 고작이다.


권 사장은 "다들 '산·학 협력이 살 길'이라고 말들은 하지만 서로 죽이 맞는 연구자와 기업인이 만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면서 "그런 면에서 우리는 행운아들"이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연구자는 연구 결과 리포트만 던져놓아서는 안 되고 중소기업이 지출하는 비록 몇천만 원의 연구비라도 얼마나 귀한 돈인지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두 사람은 아직 회사 수익을 한푼도 가져가지 못했다. 이익이 생기는 대로 연구 장비를 사들이는 등 추가 투자에 급했기 때문이다.


(031)423-0082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