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innovation)의 궁극적 목표는 '잘사는 나라'다. 참여정부 들어 지난 3년간 줄기차게 추진해온 정부 혁신은 그러나 아직 국민이 체감하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하지는 못했다. 한국경제신문은 가치혁신 ,블루오션 등 혁신캠페인을 전개해 오면서 정부 혁신이 제대로 되면 나라 전체의 혁신 인프라로 자리잡는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정부 혁신의 관제탑 역할을 하고 있는 이용섭 청와대 혁신관리수석을 26일 광화문 정부중앙청사 별관에서 만났다.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정부혁신토론회 직후였다. 대담=권영설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 -올해 정부 혁신은 어느 방향으로 간다고 보면 됩니까. "올해는 정부 혁신이 국가의 성장에너지로 발전하느냐,아니면 과거로 화귀하느냐를 결정짓는 변곡점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제도나 시스템은 마련됐는데 여기에 혼을 불어넣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혁신은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참여정부 4년차인 올해는 '공무원 속으로 내재화''정책 속으로 구체화''국민 속으로 확산' 등을 3대 기본방향으로 설정했습니다." -'국민 속으로 확산'이라는 대목이 특히 신선하네요. "최우선적으로 추진할 정책 방향이지요. 공직 내부 위주의 혁신에서 앞으로는 품질높은 정책,서비스를 제공하는 '성과창출형 혁신'으로 무게중심을 이동시킬 방침입니다. 이를 통해 혁신 성과를 국민이 체감토록 하는 데 주력한다는 계획입니다." -정말 중요한 과제지요. 실제 국민이 체감하는 성과는 그리 높지 않은 게 사실이거든요. "지난 3년간의 정부 혁신이 공직사회의 내부 시스템과 인프라를 구축하고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데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그럴 겁니다. 대민 접촉이 많은 지방자치단체나 공기업들이 지난해 뒤늦게 혁신에 동참했다는 데서도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올해부터 성과 창출형 혁신을 추진해 결과물들이 나오게 되면 국민의 생각도 많이 달라질 겁니다." -그래도 다음 정부가 혁신을 계승하지 않으면 그뿐 아닐까요. "그래서는 안 되지요. 정부 혁신의 궁극적 목표는 경쟁력있는 국가를 만드는 겁니다. 이게 정권이 바뀐다고 달라져서 되겠습니까. 그래서 정부 혁신이 참여정부만의 정책으로 끝나지 않고 대한민국의 성장전략으로 다음 정부에서도 계속 이어지도록 기반 구축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사회 전반으로 혁신의 저변을 확대하고 네트워크화하는 '국민 참여·지속 가능형 혁신'을 추진할 예정입니다." -혁신이 국가의 성장전략으로 계승되도록 하려면 선진국 수준의 국민적 혁신 역량을 갖춰야 합니다. 선진국과의 혁신 격차(innovation gap)를 줄이기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뭔가요. "사회 각 분야에서 모든 경제주체들이 혁신을 일상화해야 합니다. 그래야 정부 혁신을 넘어 국가 혁신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다른 선진국처럼 경제계 학계 언론계 시민사회 등 사회 각 분야 지도자들이 국가 혁신 아젠다를 논의하고 제시하는 민간 주도의 혁신지도자회의나 사회담론의 장이 마련됐으면 합니다. 이런 모임이 사회 전반에 혁신 친화적 환경을 조성해 선진국과의 혁신 격차를 해소하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입니다." -똑같이 '혁신'을 언급하면서도 서로 다른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정적인 의미도 많고요. 참여정부의 혁신 개념은 무엇이 다른가요. "과거 정부의 개혁이나 혁신은 주로 하드웨어적 관점에서 추진됐습니다. 조직의 통·폐합,인원 축소,부패 척결이나 사정 등에 역점을 두었던 거지요. 혁신 하면 공직자들이 피해의식을 느낄만 합니다. 참여정부의 혁신은 다릅니다. 공무원이 주체가 돼 정부의 조직문화와 공무원들의 의식과 행태,제도와 절차 등 행정 전반을 새롭게 바꾸자는 겁니다. '투명하고 일 잘하는 정부'를 만드는 것이 정부 혁신의 비전입니다." -그런데 참여정부가 왜 하필 '혁신'을 강조하게 된 것인지요. "인류 역사상 지금처럼 혁신이 필요한 때가 없기 때문이지요. 특히 정부의 혁신을 미루게 되면 정부가 국가 발전이나 기업 경쟁력을 가로막는 장애 요인이 됩니다. 이제는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의 주범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핵심 역할을 해야 합니다." -특히 노 대통령의 의지와 생각이 많이 반영된 것 같습니다. "정부 혁신의 아이디어나 추진력은 상당부분 노 대통령의 생각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몇가지만 소개해드리면 혁신 역량을 '선진 한국을 열어가는 핵심 동력'이라고 정의하고 또 '정부는 시장에 노출돼 있지 않아 해이해지기 쉬워서 끊임없이 각성하고 자기를 다잡지 않으면 뒤떨어지게 돼 있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또한 '효율적이고 긍정적인 것은 두 배로 늘리고 비효율적이고 부정적인 것은 반으로 줄이는 것이 혁신의 목표'라고 구체적인 지향점을 제시하기도 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혁신에 대한 지적은 여전히 많습니다. 예를 들면 내부 프로세스 개선에 치중한다는 비판이 대표적이지요. "내부 프로세스 개선 없이는 고질적인 비능률이나 관료주의를 해소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행정 서비스의 질도 근본적으로 향상될 수 없습니다. 참여정부의 장점이라고 한다면 단기적인 시각이나 전시성 개혁이 아닌 근본적인 시스템을 개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정부가 내세우는 혁신의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인가요.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았던 거대한 공무원 조직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지요. 새 정부 초기에 의례적으로 지나가는 바람 정도로 여겼던 많은 공직자들이 정부 혁신에 진심으로 동참하기 시작했습니다. 올해 7월부터는 고위 공무원의 경우 민간 전문가나 다른 부처 공무원들과 치열한 공개 경쟁을 통해서 보직을 받아야 합니다. '철밥통 조직'이라는 말이 사라지는 날이 드디어 온 것이지요." -혁신 추진에 가장 큰 걸림돌은 뭐라고 보시는지요. "우리 사회에 혁신을 가로막는 두 가지 큰 걸림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고주의 청탁문화와 우발적 소득(windfall profits) 기회이지요. 그런 기회가 많은 사회에서는 혁신이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기술 혁신이나 경영 혁신이 없이도 쉽게 부를 축적할 수 있는 횡재나 투기의 길이 열려 있다면 누가 어렵고 힘든 혁신의 길을 가려고 하겠습니까. 우발소득의 대표적인 예가 부동산을 포함한 투기소득입니다. 정부가 우발 소득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려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지요." -혁신관리수석실의 일을 무엇인가요. "혁신관리수석실은 한마디로 정부 혁신의 컨트롤타워(관제탑)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현재 혁신업무는 정부혁신위원회,행정자치부의 정부혁신본부를 비롯 각 부처,지방자치단체,산하 공공기관 등 많은 기관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들 기관 간의 마찰을 해소하고 상호 협력과 정보 공유를 촉진하는 것이 혁신관리수석실의 주요 업무 중 하나입니다." -국세청장 관세청장을 지내면서 많은 혁신 사례를 창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입니까. "접대비 실명제를 도입해 접대문화를 건전하게 바꾸고 기업경영의 투명성과 경쟁력 제고에 기여한 것을 큰 보람으로 생각합니다. 세무조사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확보한 것과 권력기관으로 인식되던 국세청을 서비스 기관으로 탈바꿈시킨 것도 큰 성과라고 여깁니다." -향후 혁신정책을 기획할 때 전략캔버스 등 블루오션 전략의 분석도구 사용을 정부 부처에 권장할 의향은 없으신지요. "행정에도 블루오션 전략이 필요합니다. 올해 정부혁신관리 기본계획을 기획하면서 전략캔버스 등 다양한 민간 기법을 통해 현재의 혁신 환경을 입체적으로 분석하고 그것을 토대로 해서 총제적인 전략을 수립했습니다. 다만 정부는 민간과는 달리 공공부문으로서 존재하는 고유한 미션에서 블루오션을 찾아야 한다고 볼 수 있지요." -방금 정부 혁신 토론회가 끝났는데 어떤 얘기들이 오갔나요. "중앙부처 기관장들이 모여 지난해 각 부처의 성과를 분석하고 올해 혁신 방향에 대해 논의한 자리였습니다. 과거에는 대통령에게 연초 업무보고는 거창하게 하고 제대로 추진하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았지요. 지금은 연말에 외부 전문가들이 혁신 성과를 평가해 상응하는 보상을 실시하고 있어 '보고 따로 일 따로' 현상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다른 국정업무도 많을텐데 혁신토론회를 이렇게 자주 갖는 이유는 뭔가요. "정부가 먼저 혁신하지 않고선 사회 전반의 혁신을 이끌어 낼 수 없기 때문이지요. 특히 리더가 무관심한 혁신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장·차관의 참석을 그래서 중시하고 있는 겁니다. 지난해 대통령 일정을 보면 혁신 관련 포럼이나 토론회가 무려 43회나 있었습니다. 대통령의 강력한 혁신 의지를 잘 나타내 주는 대목이지요." 정리 송대섭.양윤모 기자 dss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