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라이'(무사)와 '게이샤'(기녀)는 서구인들에게 일본을 대표하는 아이콘이다.
할리우드영화 '라스트 사무라이'(2003년)가 사무라이의 명예와 충절을 찬양했다면 롭 마샬 감독의 신작 '게이샤의 추억'은 게이샤의 아름답고 신비한 면모를 부각시킨다.
게이샤에 대해 사실적으로 묘사해온 많은 일본 영화들과 달리 이 작품에는 할리우드적인 낭만주의가 지배하고 있다. 게이샤역에 일본 배우가 아니라 공리 장쯔이 양자경 등 중국계 스타를 기용한 것도 할리우드의 상업영화임을 보여준다.
'게이샤의 추억'은 자유의지가 아무런 역할을 못하는 인생에 관한 관찰기이다. 태평양전쟁 당시 어수선한 시국에 가난 때문에 도시에 팔려온 어린 치요는 하녀노릇을 하다가 최고의 기녀 사유리(장쯔이)로 성장하게 된다. 사유리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는 삶을 살아간다. 그녀는 뭇 남자들로부터 구애를 받지만 정작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취할 수는 없다. 또 사랑하는 남자의 연인이 될 수 있지만 아내가 될 수는 없다.
게이샤를 초라한 '창녀'로 묘사해 온 일본 영화의 전통과 달리 이 작품에서 게이샤는 신비함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일종의 예술가다. 사유리가 술집에서 퍼포먼스를 펼치고 남성 고객이 열광하는 장면은 당시 화류계를 현대의 연예계로 은유하고 있다. 게이샤가 생명으로 여기는 아름다움과 신비감도 오늘날 대중스타와 다르지 않다.
신비감이란 서구인이 동양에 대해 갖고 있는 오리엔탈리즘의 키워드이기도 하다. 영화는 등장인물의 대사를 통해 게이샤의 '신비한' 눈을 거듭 강조한다. 카메라도 새벽과 황혼녘,은은한 조명이 깔린 술집 등 윤곽이 뚜렷하지 않은 풍경을 나열한다. 자연광은 의도적으로 배제돼 있고 반사광을 사용해 부드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여기에 아름다운 색채와 장식들로 포위돼 있는 탐미적인 영상미를 곁들인다.
그러나 인간의 삶을 다룬 드라마임에도 좌절과 고통의 깊이는 깊지 않다. 사유리의 인생에 장애물은 사실상 다른 기녀의 질투 뿐이다. 질투란 화염(불을 지르는 장면)으로 전재산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지만 정신적 좌절과 고통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것일 수 있다.
2월2일 개봉,15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