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8 15:26
수정2006.04.08 19:34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외경제 분야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가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과의 자유무역협정(FTA·Free Trade Agreement) 체결이다.
12월 중순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에서 체결된 한·아세안 FTA는 우리가 거대 경제권과 체결한 최초의 FTA다.
이 협정 체결에 따라 한국과 아세안 국가들 간의 교역 규모가 연간 160억달러가량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올해 중 완료하기로 돼 있는 서비스 및 투자 부문 협정이 체결되면 금융,교육,의료 등 서비스 부문의 진출도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앞서 2004년 칠레와의 FTA가 발효된 데 이어 지난해 8월과 12월에는 각각 싱가포르와 유럽자유무역지대(EFTA·스위스,노르웨이,아이슬란드,리히텐슈타인)와의 FTA가 잇달아 체결됐다.
FTA는 국가들 간에 교역을 통해 상호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체결하는 지역무역협정(RTA·Regional Trade Agreement)의 한 가지 형태다.
RTA는 FTA 이외에도 다양한 수준 및 단계에서 이뤄진다.
FTA는 협정 체결 국가 간 관세를 철폐하거나 대폭 축소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보다 통합 수준을 한 단계 높여 다른 국가들로부터의 수입품에 대해 공동 관세율을 적용하는 것이 관세동맹(Customs Union)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협정 체결 국가 간에 자본 노동력 등 생산요소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것이 공동시장(Common Market)이다.
가장 발전된 RTA의 형태는 단일시장(Single Market)으로서,해당 국가들이나 지역 안에서 공동의 화폐를 발행하고 통합된 경제정책을 수행한다.
EU(유럽연합)이 대표적인 사례다.
세계 각국 또는 지역 간 무역협정은 2005년 11월 말 현재 186개에 이른다.
현재 지역무역협정의 95% 이상이 FTA에 해당한다.
그 외에 EU는 단일시장 단계이며,중앙아메리카공동시장(CACM·Central American Common Market)과 카리브공동시장(CCM·Caribbean Common Market) 등은 공동시장 단계를 목표로 추진 중이다.
관세동맹 사례로는 1930년대 독일 관세동맹(Zollverein)과 1940년대 베네룩스 관세동맹을 들 수 있으며 현재는 없다.
대부분이 FTA 단계에 머물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높은 단계의 지역무역협정이 반드시 좋다고만은 할 수 없다.
공동시장 협정을 체결해 자본,노동력 등 생산요소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할 경우 자칫 정치,사회적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예컨대 외국인 근로자를 받아들이면 어느 정도 내국인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EU처럼 단일시장을 형성해 경제통합을 할 경우 한 나라에 필요에 따른 경제정책을 마음대로 펴기 어려워진다.
또한 FTA 단계에서도 만만치 않은 부작용이 따를 수 있다.
FTA란 비교 우위에 따른 교역이 전면적으로 이뤄지는 것을 뜻한다.
그 결과 경쟁력 있는 산업은 더욱 성장하고 경쟁력 없는 부문은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예컨대 중국과 FTA를 체결할 경우 우리나라는 농업은 대다수의 부문에서 가격경쟁에 밀리게 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장기적 경제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성장동력 부문의 부품 업체들까지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국제경쟁력이 약한 부문에 대한 보상 및 구조개혁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동시다발적' FTA 추진은 올해도 지속될 전망이다.
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한 다자간 협상이 진전을 보이지 못함에 따라 FTA를 통한 통상확대가 현안으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ASEAN과의 상품무역협정의 적용 품목을 결정하고 원산지 규정을 조정하는 한편 서비스 및 투자 자유화 협정을 연말까지 마무리지을 계획이다.
또한 캐나다,메르코수르(MERCOSUR·브라질,아르헨티나,우루과이,파라과이),인도,중국,멕시코,일본 등 모두 25개 국가나 지역과 지역무역협정을 추진한다.
이 가운데 멕시코,일본과의 협정 추진은 협상 쌍방이 자국 산업의 피해 우려와 내부 정치적인 문제 등으로 인해 지연되고 있다.
중국이나 미국,그리고 EU 등 거대 경제권과의 FTA 협정은 아직 첫 단추조차 끼우지 못한 상황이다.
미국의 경우 미 의회가 정부 주도의 FTA 추진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대통령에게 부여한 무역진흥권(TPA)이 2007년 6월 만료된다.
따라서 올해 중 협상을 가속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추가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쇠고기 수입 재개와 스크린 쿼터 철폐 또는 축소 등 각종 규제의 철폐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분야에서 진전이 없을 경우 한국의 대미 주요 수출 품목에 대한 관세율 인상 등 통상 제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뜻을 비치고 있다.
일정은 촉박하고 협상 의제는 우리에게 매우 민감한 사안인 만큼 특단의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
아울러 시너지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되는 ASEAN과의 관계에서는 FTA를 넘어 환율 및 통화 부문 협력,환경 및 에너지 부문 공동대응,인적 교류 확대 등을 거쳐 공동시장으로 나아가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아프리카,중미 등 그 동안 교역이 활발하지 못한 다른 지역들에 대해서도 남아프리카공화국,멕시코 등 허브(Hub) 국가들과의 FTA를 적극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서원 정책분석그룹 책임연구원 swlee@lger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