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복잡해져 갈수록,기술이 발달할수록 오히려 '단순함(simplicity)의 미덕'이 부각되는 법일까.


온갖 다양한 기능을 갖춘 첨단 디지털 기기가 쏟아지고 있지만 정작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하는 제품은 심플한 디자인과 사용법을 미덕으로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미국의 경제 잡지인 비즈니스위크는 최근호(12월19일자)에서 '단순미'를 올해 경제·과학계를 수놓은 아이디어 21가지 중 하나로 선정했다.


미국 애플컴퓨터의 플래시메모리 타입 MP3플레이어 '아이팟 나노'는 단순미로 성공한 대표적인 제품이다.



무게 42g,두께 0.69cm에 불과한 '날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제품은 플래시 MP3플레이어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한국 업체들의 자존심에 타격을 입혔다.


'아이팟 나노'는 비록 동영상 재생과 같은 부가 기능은 별로 없지만 깔끔한 디자인과 기가바이트(GB)급의 대용량이 강력한 무기로 작용했다.


또 복잡한 버튼이 아닌 '클릭 휠'을 이용한 간단한 사용법이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덴마크의 '명품' 오디오 업체인 뱅앤올룹슨이 최근 선보인 휴대용 오디오 '베오사운드 3'는 아날로그적인 디자인에 첨단 기능을 담은 디지털 기기다.


겉보기엔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연상시키는 모양새를 지녔지만 속 안엔 FM라디오,알람,초시계,메모리카드(SD카드) 재생 기능 등 다채로운 내용물을 담고 있다.


메모리카드만 꽂아도 그 안에 담긴 음악파일을 간편하게 재생할 수 있다.


이 제품은 또 외부에 돌출된 버튼이 없는 깔끔한 디자인과 테이블 위에 살짝 올려놓아도 부담스럽지 않은 크기여서 장식 효과도 낼 수 있다.


필립스전자는 '단순함'을 키워드로 한 미래형 디지털 기기를 내년께 대거 시판할 예정이다.


이 중 '인터치'라는 터치스크린 방식의 가족게시판은 거울처럼 보이지만 음성이나 문자,영상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는 독특한 제품이다.


스크린에 조명이 들어오면 마치 인스턴트 메신저처럼 네트워크에 포함된 가족 구성원의 인물 사진이 나타나고 이들이 보낸 메시지도 볼 수 있다.


필립스전자 관계자는 "모든 가족에게 한번에 동일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영상기기나 컴퓨터 없이도 간편하게 디지털 이미지를 볼 수 있는 필립스전자의 '모멘토'라는 제품도 눈길을 끈다.


손바닥 안에 들어갈 만큼 작은 유리공 모양을 띤 이 앨범은 버튼이나 다이얼이 없이 센서만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가까이 접근하면 자동으로 전원이 켜지며,작은 손동작만으로도 영상을 재생할 수 있다.


이 밖에 로봇청소기의 '원조'로 통하는 아이로봇 '룸바'와 펜처럼 글씨를 쓰면서 휴대폰처럼 음성통화나 문자메시지 전송 기능도 갖춘 지멘스의 '펜폰' 등도 단순미를 추구하는 디지털 기기로 꼽을 수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제품이 첨단으로 간다고 해서 디자인이나 작동법까지 복잡해지면 소비자는 아예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며 "소형 MP3플레이어,슬림폰 등 최근 시장 동향을 봐도 두껍고 골치 아픈 설명서가 필요 없이 몇번의 동작만으로 간단하게 다룰 수 있고 이동시키기도 간편한 제품이 '베스트셀러'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고성연 기자 amaz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