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로 김영삼 정부 안기부의 전방위 도청 실태가 드러나면서 도청 실무를 담당한 공운영씨의 집에서 발견된 도청 테이프 274개가 어떻게 처리되고 그 내용이 공개될 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검찰은 구체적인 테이프 내용을 공개하면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수사 초기부터 내용 공개에 대해서는 극도로 말을 아끼며 보안을 유지했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이미 내용 파악을 끝낸 것 아니냐는 추측이 무성했지만, 담당 수사 검사를 제외하고는 부장검사와 수사를 지휘한 서울중앙지검 2차장, 서울지검장, 검찰총장에게도 자세한 내용은 보고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 검찰 "우리가 공개하기는 곤란하다" = 검찰은 테이프 내용이 자세히 공개되면 대화 당사자들의 사생활 침해 등에 따른 불필요한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고 판단해 공씨를 상대로 공소 유지를 목적으로 도청 대상자와 장소 등만을 정리했다. 이종백 서울중앙지검장은 9월 27일 국회 법사위 국감에서 "과연 그 테이프가 대화자 간의 대화를 불법적으로 녹음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인했다"고 말해 테이프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확인하지 않았음을 이미 시사했다. 그는 "테이프 내용 공개는 통신비밀보호법상 허용이 안되니 (검찰 입장에서) 공개는 할 수 없다고 본다. 다만 국회에서 입법조치를 통해 결과가 나오면 그에 따라 충실히 대응하겠다. 내용 수사의 적법 여부는 검찰 내부에서 심층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요컨대 법률 전문가 집단인 검찰이 스스로 실정법을 어기는 행위를 할 수 없으니, 입법권자가 테이프 내용 공개, 수사와 관련된 법을 만들면 따르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로부터 찾아낸 파생 증거의 증거능력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독수독과(毒樹毒果) 이론'도 테이프 내용 공개 및 수사에 부정적인 검찰 의견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됐다. 검찰은 수사 발표문에서도 "불법 도청자료 자체를 활용하는 수사는 옳지 못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며 "언론에 공개된 `X파일' 관련 고소, 고발도 `X파일' 내용을 직접 단서로 사용하지 않고 관련 증거자료를 최대한 수집해 수사했다"고 밝혔다. ◇ `특별법ㆍ특검법' 변수 = 공개 불가 입장을 밝힌 검찰과 달리 정치권은 도청 수사 초기부터 내용 공개 및 수사와 관련해 각 당이 특별법과 특검법을 발의하는 등 공개 쪽으로 의견을 모아가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8월 9일 이은영 의원 등 146명이 특별법을 발의했고, 한나라당 등 4야당은 강재섭 의원 등 145명이 특검법을, 민주노동당에서는 천영세 의원 등 10명이 특별법을 각각 발의했다. 열린우리당 안은 별도 위원회가 테이프를 듣고 불법 정치자금과 뇌물 등 범죄와 관련된 내용만 공개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고, 수사 범위는 따로 규정하지 않았다. 한나라당 안은 특별검사가 공소시효와 관련 없이 수사한 뒤 위법 사실을 발표하는 게 핵심이고, 민주노동당 안은 범죄 혐의가 있는 내용을 의무적으로 공개토록 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이달 1일 야4당이 공동 제출한 특검법안 취지를 수용, 국회 법사위 계류 중인 특별법과 절충한 `도청 테이프 처리와 특별 검사 임명에 관한 법안'을 제출하기로 방침을 정해 테이프 공개 논의는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정치적 지형에 따라 테이프 처리 방안은 다르지만, 공개가 필요하다는 데는 의견이 모아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법조계, 학계에서는 테이프 내용 공개가 헌법에 어긋난다며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아 실제 입법 과정에서 팽팽하게 찬반 의견이 맞설 전망이다. 검찰은 테이프 처리와 관련, "형사소송법에 명시된 압수물 처리 기준에 따라 처리하겠다"고만 밝혔다. 형사소송법은 정당한 권리자에게 돌려줄 수 없는 압수물은 관보에 사유를 게재한 후 국고에 귀속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가치없는 물건은 폐기할 수 있지만, 274개 테이프의 경우 정치권의 공개 논의가 남아 있어 당분간 검찰청사 압수물 창고에 그대로 보관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이광철 기자 mino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