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전 대륙을 통일한 리더십..'CEO진시황의 패도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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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은 냉철한 인물이었다.
법 집행이 엄격했고 정적을 제거할 때는 머리를 잘 썼기 때문에 모반이 일어날 틈을 주지 않았다.
게다가 그에게 집중된 권력과 카리스마는 하늘을 찔렀다.
수하의 왕전 장군이 60만 대군을 이끌고 초나라를 정벌하러 떠났을 때였다.
장군은 멀리 진격하기도 전에 다섯 번씩이나 사자를 진왕에게 보냈다.
수도 함양에 있는 좋은 땅과 집을 상으로 달라고 졸라댔던 것이다.
장군의 부하들은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
"대관절 왜 그리 재산을 탐하십니까."
그러자 왕전이 대답했다.
"전대미문의 큰 병력을 내가 이끌고 있으니 진왕은 내심 불안할 거요.
만약 지금 누가 나를 모함한다면 일거에 목이 날아갈 수도 있소.대비하려는 것 뿐이오." 이 말은 곧 '난 소인배라 나라를 훔칠 그릇은 못 되니 안심하고 그저 배불리 지낼 정도의 재산이나 달라'는 메시지였던 것이다.
'CEO 진시황의 패도경영'(진성위엔 지음,이은희 옮김,휴먼앤북스)은 2000여년 전 중국을 최초로 통일시켰던 황제의 강력한 리더십을 소개한 책.'상을 내릴 때는 가뭄에 단비같이, 벌은 벼락치듯 무섭게'처럼 실정법을 바탕으로 한 철저한 상벌·실리주의 정치가 눈에 띈다.
법가의 패술(覇術) 전략을 이어받은 이러한 국가경영은 비록 합리성과 비합리성의 양 극단을 오갔던 사실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리더들에게 의미심장하다.
특히 위기에 빠진 조직이 변화와 혁신을 도모하는 데 도움을 준다.
13세에 왕이 되어 지치지 않는 추진력을 보여 줬던 진시황.하루에 1석(약30kg)의 서류를 결재하지 않으면 잠을 못잤다고 한다.
파노라마 같은 그의 삶과 함께 펼쳐지는 진나라의 탄생과 몰락,문자·도량형의 통일,만리장성·병마용갱….중국의 로마자 표기가 '진'에서 유래할 만하다.
552쪽,2만5000원.
김홍조 편집위원 kiru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