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게 새는 '수수료', 그림의 떡 '대출'..금융상품 오해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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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은행창구가 부쩍 붐빈다. ‘국민 금융상품’ 적립식펀드, 종신보험을 밀어낸
변액유니버셜보험, 2년 만에 부활한 생애최초주택구입자금대출, 소득공제 혜택이 있는 연금신탁 등 화려한 진용의 금융상품들이 고객몰이를 하는 덕이다.
하지만 어느 경우나 그렇듯, 밝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홍보문구에 이끌려 선뜻 가입했다가 생각지 못한 불이익을 당하거나 내집마련 희망에 부풀어 은행을 찾았다가 ‘거부’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 모두 제대로 알지 못하고 접근한 탓이다.
요즘 가장 잘 팔리는 금융상품들에 대한 오해는 무엇이고, 진실은 또 무엇인지 파헤쳐 봤다.
취재=박수진 기자
올해 최대 히트 금융상품은 적립식펀드다. 예적금을 밀어내고 금융상품 ‘지존’에 올라 금융권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적립식펀드가 주가를 견인한다고 할 만큼 한국경제에 대한 기여도 대단하다. 특히 은행의 판매실적이 압도적이어서 저금리로 은행을 떠난 고객을 되돌아오게 만드는 일등공신 역할을 하고 있다.
연말 소득공제 시즌이 다가오면서 히트상품이 또 하나 떠오르고 있다. 연 240만원까지 소득공제가 가능한 연금신탁(보험)이 그것이다. 월 20만원씩 납입할 경우 최고 92만원의 세금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어 세금을 한푼이라도 줄이고 싶은 직장인, 자영업자의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 중이다.
여기에 2년 만에 부활한 생애최초주택구입자금대출까지 인기를 더하자 이래저래 은행을 찾는 발길이 부쩍 늘었다. 한동안 부동산에 빼앗겼던 국민 관심사가 금융으로 바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주식시장 활황, 서민 주택마련 지원 정책과 더불어 생기를 되찾는 모습이 뚜렷하다.
하지만 밝은 시장 이면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개미들 역시 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가입 시점의 장밋빛 분위기와는 달리 뒤늦게 분통을 터뜨리며 ‘이건 아니다’고 외치는 이들이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개별 금융상품의 가려진 측면을 알고 나서의 반응은 ‘실망’의 수준을 넘어선다. 한 금융전문가는 “대박의 꿈은 오해에서 비롯되고, 진실을 알게 되면 꿈에서 깬다”는 말로 요즘 분위기를 설명했다. ‘오해는 풀고 진실은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적립식펀드= 회사원 이미정씨(28)는 지난해 12월 2년 동안 월 10만원을 불입하는 증권사 적립식펀드에 가입했다. 증권사에 다니는 사촌오빠의 권유에 ‘마지못해’ 가입한 것이었다. 4개월이 지난 후 이씨는 자발적 선택으로 월 30만원씩 불입하는 적립식펀드를 하나 더 만들었다. 적립식펀드 붐이 본격적으로 인데다 적금보다 낫다는 생각에 결정한 일이었다. 적립식펀드로 ‘대박’을 노려볼 심산이었다.
하지만 지난 11월 초 증권사를 찾은 이씨는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급전이 필요해 중도해지를 문의하니 “이익금의 70%를 환매수수료로 내놓아야 한다”는 답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 경우 30% 가까운 높은 수익률에도 손에 쥐는 돈은 원금보다 조금 많은 수준이다. 이씨는 “가입 당시 환매수수료에 대해 들어본 기억이 없다”면서 “뒤늦게 알아보니 환매수수료는 물론 신탁보수도 만만치 않았다”고 말했다. 펀드만 가입하면 저절로 돈이 불어나는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던 셈이다.
요즘 인기를 끄는 적립식펀드는 신탁재산의 일부를 주식에 투자하는 주식형이 대부분이다. 주식시장이 활황을 띠면서 적잖은 변수에도 불구하고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워낙 인기가 높다 보니 가입시 반드시 알아둬야 할 사항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경우도 많다.
주식형 적립식펀드 가입자가 흔히 간과하는 게 각종 수수료와 관련한 내용이다. 상품에 따라 기준이 다르지만, 환매수수료의 경우 가입 후 90일 미만이면 이익금의 70%를 뗀다. 1년 또는 약정기간 자체를 기준으로 삼는 상품도 적잖다. 마치 은행 적금을 기간 내에 해지하면 이자가 불이익을 받듯, 적립식펀드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불이익을 받는 금액의 폭이 이익금의 70%나 돼 가입자들이 종종 놀라곤 한다.
또 신탁보수는 전체 금액의 2.5%에 달한다. 세부적으로는 운용사, 판매사, 수탁사, 사무수탁사가 각각 일정 비율로 보수를 나눠 갖는다. 가령 총자산이 1억원이라면 1년에 250만원을 신탁보수로 내는 셈이다. 게다가 신탁보수는 매일 기준가에 따라 정산돼 빠져나가기 때문에 가입자는 체감하기 어렵다. 또 신탁보수는 수익이 나든, 나지 않든 철저하게 계산된다.
약정기간 후 운용도 기존 은행상품과 다르다. 가입자가 환매신청을 할 때까지 펀드는 살아 움직이기 때문이다. 단 환매 시점이 중요한데, 주식시장이 상승기일 때 환매하는 게 가장 유리함은 말할 것도 없다.
실제로 지난 2003년 5월 3년 동안 운용한 한 적립식펀드의 경우 3년 수익률이 1.92%에 불과했지만, 이를 곧바로 환매하지 않고 2년 후인 지난 5월에 환매한 이는 58%의 수익을 거머쥐었다.
그만큼 환매 시점의 조절이 중요하지만 문제는 아무도 시기 선택을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10억원 이상 자산가만이 프라이빗뱅킹 서비스를 통해 컨설팅을 받을 수 있다. 상품을 판매한 은행이나 증권사 창구직원들은 수익률이 좌우되는 결정에 가급적 개입하지 않으려 한다. 또 이런 모든 사실을 상품 가입시 안내받는 경우도 드물다. 운용 관련 책자를 받아도 꼼꼼히 읽는 이가 거의 없어 뒤늦게 실랑이가 벌어지곤 한다.
적립식펀드를 적금 대체용으로 취급, 1년짜리 단기로 가입시키는 금융사들도 지적감이다. 적어도 3~5년 기간으로 운용하는 게 수익률 면에서 안정적이라는 게 금융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김휘곤 한국펀드평가 펀드평가팀장은 “너무 쉽게 펀드 가입을 결정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자기책임하에 투자하는 실적배당부 상품이므로 손실이 발생해도 전적으로 투자자 본인의 책임이라는 기본을 알고 투자에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애최초주택구입자금대출= 11월부터 재개된 생애최초주택구입자금대출의 인기가 하늘로 치솟고 있다. 이미 올해 지원규모가 당초 2조원에서 3조2,000억원으로 대폭 늘어났다. 그만큼 저리의 융자로 집을 장만하려는 무주택 서민이 많다는 이야기다.
결혼 5년차인 회사원 박은수씨(37)도 이참에 집을 장만할 요량으로 최근 주거래은행 대출창구를 찾았다. 현재 전세로 살고 있는 다세대주택을 산 후 재개발을 통해 새 아파트 입주를 노려볼 생각이었다. 박씨 집 주변은 오래전 재개발 예정지구로 지정됐지만 사업추진이 지지부진한 곳. 때마침 집주인도 집을 팔 계획이어서 박씨는 희망에 부풀었다.
대지 10평, 건물 15평의 시세는 1억원. 전세보증금 5,000만원을 제외하고 5,000만원만 대출을 받으면 되니 한도 걱정도 없었다. 생애최초주택구입자금대출의 한도는 1억5,000만원, 집값의 70%까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박씨는 집값의 70%인 7,000만원의 대출을 받아도 금리가 연 5.2%로 낮은 편이라 큰 부담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꿈은 단 5분 만에 깨졌다. 아파트와 달리 다세대주택은 공시지가와 건축물 상태를 기준으로 시세를 측정, 박씨의 경우 실제 대출받을 수 있는 금액이 1,000만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또 임대차를 고려해 방 하나당 1,600만원을 공제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가용자금이 부족한 그로서는 나머지 금액을 메울 길이 없어 집 장만을 포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박씨는 “알고 보니 아파트만을 위한 대출이었다”면서 “다세대나 단독주택, 변두리 나홀로 아파트 등 국민은행 시세표에 포함되지 않은 주택은 사실상 혜택을 받지 못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생애최초주택구입자금대출이 2년 만에 부활한 후 무주택 서민들의 내집마련이 늘고 있는 가운데, 박씨처럼 좌절하는 서민도 늘고 있다. 대출 대상이 넓고 금리가 낮아 주택 대출 상품 중 최고로 꼽히지만 그 대상은 국민은행 시세표에 올라 있는 주택이 전부다.
실제로 국민은행의 부동산 시세표는 건설교통부와 시중은행들이 주택가격 통계와 대출액 산정에 이용할 만큼 신뢰도가 높지만 80가구 미만의 소규모 아파트 단지나 단독주택, 다세대ㆍ다가구주택은 싣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신뢰할 만한 부동산가격’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일정 규모 이상의 아파트가 아니면 정확한 담보가격을 산정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사각지대’가 존재함을 시인했다.
결국 사고자 하는 집이 어떤 종류, 얼마인가 등에 따라 생애최초주택구입자금대출의 조건이 결정되는 셈이다. 모든 무주택자에게 기회가 열려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또 아파트라 하더라도, 방 개수가 많을수록 대출 가능 금액이 적어진다는 것도 유념해야 한다.
◇변액유니버셜보험= 자영업자 김영민씨(42)는 몇 달 전 변액유니버셜보험에 가입했다. 보장과 저축, 투자를 한꺼번에 해결하고 재정적 유연성까지 보장된다는 말에 선뜻 가입을 했다. 무엇보다 ‘펀드에 투자하는 보험’이라는 말에 고수익의 기대를 한껏 키웠다.
김씨가 든 보험은 만기 20년에 월 납입액은 15만원 정도. 국내외 유망 펀드와 주식에 투자돼 줄잡아 4,000만원 정도의 목돈을 만들 수 있다는 게 보험설계사의 설명이었다. 또 자금에 여유가 있을 때는 추가 납입이 자유롭고, 반대로 필요한 돈을 언제든 인출할 수도 있다는 점도 큰 매력으로 꼽았다. 가입기간은 20년이지만 경제 상황에 따라 조절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김씨가 받은 안내는 그야말로 가상의 ‘기대 수준’이다. 김의수 TNV금융컨설턴트그룹 개인자산관리팀장은 “10년이 넘어가는 장기투자가 아닌 바에야 변액유니버셜에 가입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중간에 납입을 멈추게 될 가능성이 있다면 오히려 적립식펀드가 유용하다는 설명이다.
그 이유는 사업비 등 제반 수수료와 변액상품의 특성 때문이다. 변액유니버셜 가입자 대부분은 자신이 납입한 돈이 전부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입 후 7년 동안 적립 원금의 15~20%가 사업비로 빠져 나간다. 그뒤에는 5~7%가 사업비로 빠진다. 사업비란 보험사의 설계사 비용, 사망 보장 비용 등이다. 판매시 이 사실을 알려주는 금융사는 흔치 않다.
또 기존 보험료의 2배까지 추가납입이 자유로운 게 사실이지만 이 역시 수수료가 붙는다. 형편에 따라 납입을 중단할 수 있다는 조건을 믿고 월정 보험료를 내지 않는다면 적립금에서 보험료가 깎이기도 한다. 반드시 납입중지 신청을 해야 불이익을 피할 수 있다.
또 해약 환급금 범위 내에서 보험료를 인출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부각되고 있지만, 초기 2년 동안은 실제 효과가 미미하다는 게 정설이다. 또 중도 인출할 경우 해약 환급금이 줄고 보장금액도 적어진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목적에 따른 선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의수 팀장은 “적립식펀드와 변액유니버셜보험의 수익률을 비교해 보면, 대개 가입 후 12~13년이 되면 접점이 생긴다”면서 “따라서 장기적으로 목돈을 마련하고 싶거나 노후 자금을 조성할 목적이라면 변액유니버셜을, 중단기로 투자하고 싶다면 적립식펀드를 선택하는 게 유리하다”고 말했다.(그래프 참조)
가입자는 투자할 펀드의 변경이 자유롭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변액유니버셜은 연간 8~12회 투자 대상을 조정할 수 있고, 가입자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주가가 떨어질 때에 대비하고 자신의 자산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선 꼭 필요한 장치다.
하지만 대부분의 가입자가 조정은커녕, 조정이 가능하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판매 당사자인 보험설계사나 은행 직원이 미리 이야기를 해주지 않거나 상품판매 후 수익률 관리를 하지 않고 손을 털어버리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의 보험상품을 누가 관리해주냐에 따라 수익률이 천차만별이 될 수밖에 없다. 자산 포트폴리오 조정 능력을 보유한 판매자를 선택해야 함은 물론이다. 투자 결과에 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소비자에게 있는 만큼,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품을 고르는 게 중요한 셈이다.
이런 문제점이 해결된다면 변액유니버셜만의 장점으로 탁월한 수익을 낼 수도 있다. 김의수 팀장은 “가입 7년 후 사업비를 상각하고 나면 변액보험 운용수수료는 0.8~1%, 적립식펀드는 2.5%로 적잖은 차이가 난다”고 말하고 “변액보험은 시장상황에 따라 주식형이나 채권형으로 펀드 갈아타기가 가능하고 실적배당형인 만큼 10년 이상 장기로 운용했을 때 장점이 많은 상품”이라고 설명했다.
sjpark@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