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가 강경파와 온건파의 대립으로 조직의 수장인 위원장들이 잇따라 중도 하차하면서 투쟁 노선을 확립하지 못하는 등 심각한 내부 혼란을 겪고 있다. `대화와 투쟁'의 병행을 주장하며 온건노선을 견지하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이수일 위원장과 민주노총 이수호 전 위원장이 강경파의 반발로 사퇴하면서 노정 간 관계의 경색 국면은 더욱 장기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노동계는 일단 강경파의 목소리가 높아질 것으로 보이지만 비정규직법 등의 노동현안과 관련된 투쟁에 대해 책임있는 주도세력이 나오지 않고 있는 데다 `전투적' 투쟁에 대한 따가운 비판여론도 높아 강경투쟁 노선만을 고집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이수일 위원장의 사퇴로 당초 12월1일로 잡혀 있던 전교조의 교원평가 시범실시 반대 연가투쟁 돌입 자체가 불투명해져 민주노총이 같은 날 벌일 예정인 총파업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 온건파 잇따라 `좌초'= 전교조의 대중성 강화와 교육현장 중심으로의 변화 등을 내세우며 올해 1월 취임한 이수일 위원장이 27일 연가투쟁 연기 등에 대한 강경파의 반발로 임기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 전격 사퇴했다. 온건파로 분류되는 이 위원장은 그동안 대화와 투쟁의 병행 기조를 유지하며 전교조를 이끌어왔지만 강경파들이 현안마다 발목을 잡으면서 조직 운영에 어려움을 겪어왔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교조는 다음달 중순까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내년 3월께 새 집행부를 구성할 예정이지만 정파 간 갈등으로 상당 기간 내부 혼선을 빚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수일 위원장이 27일 자진사퇴 직전 전국 임시대의원대회에 발의한 교원평가 투쟁방침 승인안과 강경파가 내놓은 저지투쟁 발의안이 모두 부결된 점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앞서 `사회적 대화'를 공약으로 내결고 지난해 2월 취임했던 이수호 민주노총 전 위원장도 지난 10월 노조 채용비리와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의 비리 연루 등으로 도덕성에 타격을 입으면서 중도 사퇴했다. 이 전 위원장은 연초 3차례의 대의원대회를 통해 노사정 대화 참여를 시도했으나 강경 좌파의 저지로 사회적 대화 성사가 무산되면서 지도력에 타격을 입은 뒤 내부 비리 문제로 결정타를 맞고 `사퇴'라는 최후의 수단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민주노총은 이 전 위원장 사퇴 후 강경파인 범(汎)좌파가 주도하는 비상대책위원회가를 조직을 이끌고 있지만 정파 간 갈등으로 확실한 방향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 노동계 동투(冬鬪) 투쟁동력 약화=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 쟁취 등을 위해 12월1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할 예정이지만 투쟁동력이 약해 총파업이 제대로 이뤄지기 쉽지 않다는 관측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민주노총이 내부 혼선을 빚고 있는 가운데 핵심 사업장인 현대차와 기아차의 참여 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이고 전교조마저 정파 간 갈등을 빚으면서 `파업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현재 전체 조합원의 52%가량이 1∼25일 실시된 총파업 찬반투표에 참여, 60% 정도가 찬성, 비정규직 법안에 대한 노사 간 교섭이 결렬되면 다음달부터 총파업에 들어갈 예정이지만 투표율과 찬성률이 낮아 파업효과는 미지수다. 민주노총은 쌀 관세화 유예 협상 비준안 국회 통과에 대해 강력 반발하고 있는 농민단체들과의 연대투쟁으로 투쟁동력을 높이려 시도하고 있으나 다른 조합원들의 파업 참여를 독려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 관계자는 "현대ㆍ기아차 등 핵심 사업장들이 불참할 것으로 보이는 데다정치적 파업에 대한 호응도도 낮아 이번 총파업의 영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노정관계 경색 장기화 `우려'= 사회적 대화를 추구하던 노동계의 온건파들이 잇따라 물러나면서 가뜩이나 경색돼 있는 노정 관계가 더 악화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는 온건파의 퇴조로 강경파들이 득세하면서 이미 단절돼 있는 노정 간 대화 성사 가능성이 더욱 희박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게다가 노동계가 정파 간 갈등으로 방향성마저 상실하면서 사회적 대화 성사를 위한 노정 간 논의마저 이뤄지기가 어려워 노정 간 관계 경색 국면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비정규직 법안과 노사관계 법ㆍ제도 선진화 방안(로드맵) 등 노동계 주요 현안들에 대한 논의도 제자리 걸음을 면치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계 전문가들은 꼬일 대로 꼬인 노정 간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경우 대화의 파트너로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노동계도 내부 성찰을 통해 변화된 사회에 호응할 수 있는 투쟁노선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노동연구원 배규식 연구위원은 "노동계가 고립되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적 변화를 인정하고 그에 따른 대응전략을 찾아야 한다"며 "정부도 대화 복원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현영복 기자 youngbo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