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정세균(丁世均) 의장이 27일 `안기부 도청 X파일' 특별법과 특검법을 동시 처리하자고 제안함에 따라 석달여간 교착 상태를 보여온 X파일 관련법 협상 및 심의가 새국면을 맞을지 주목된다. 제3의 민간기구를 설치해 X파일의 공개 여부 등을 결정하고 수사 여부는 검찰이 자체 판단하게 하는 특별법을 추진해야 한다며 야당의 특검법 요구를 외면하던 우리당이 종전의 태도에서 신축성을 띠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즉 X파일 사건 수사를 검찰이 아닌 특별검사에 맡겨야 한다는 한나라당의 요구를 부분적으로 수용하는 `절충안'이 나온 셈이어서 일단 협상의 여지가 생긴게 아니냐는 것. 물론 X파일 공개방식을 규정한 특별법에 대해 한나라당이 여전히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특별법.특검법의 패키지 처리가 가능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실제로 한나라당은 정 의장의 동시 처리 제안에 대해 "절대 수용할 수 없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나경원(羅卿瑗) 공보담당 원내부대표는 "특별법이 민간인을 내용 공개의 주체로 한 것은 위헌성이 있어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정 의장의 제안을 완전히 백안시할 수도 없는 상황이 조성될 개연성은 충분하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협상에 임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나라당이 협상의 여지를 보이지 않을 경우, 우리당이 정 의장의 제안을 연결고리로 민노당과 공조 가능성을 탐색할 여지가 커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민노당은 한나라당과 함께 특검법 공동발의에 참여했으면서도 특검 또는 검찰이 X파일의 내용을 공개하도록 하는 특별법도 제출해 놓은 상태이다. 이는 정 의장의 제안과 상당히 닮아 있어 양당이 마음만 먹으면 손을 맞잡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원내 의석분포를 보더라도 우리당 144석과 민노당 9석을 합하면 과반인 153석을 웃돌아 법안처리에 문제가 없다. 최근 우리당 문병호(文炳浩) 법률담당 원내부대표가 "한나라당이 특검수용도 안되고 X파일 내용 공개도 안된다면 다른 야당과 연대해 법안을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밝힌 것이나, 법사위 간사인 우윤근(禹潤根) 의원이 "직권상정도 검토가능하다"고 말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곱씹을만하다는 지적이다. 한나라당이 특별법 처리를 반대할 것이라는 점을 뻔히 알면서도 정 의장이 이 같은 절충안을 낸 것은 민노당과의 공조에 의한 특별법과 특검법 동시 처리 가능성을 염두에 둔 `복선'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정 의장이 "경우에 따라 특별법과 특검법 둘 다 같이 처리할 수도 있고, 절충할 수도 있다"고 여운을 남긴 대목이 시선을 모은다. 민노당과 공조할 수도 있는 반면, 한나라당이 협상에 참여할 경우엔 한나라당이 요구하는 특검법을 살리면서 특별법의 내용만 절충해 넣는 방식을 택하겠다는 뜻으로도 해석되기 때문이다. 여당으로서 제 1 야당인 한나라당을 제외한 채 법안을 처리할 경우 따를 정치적 부담감까지도 의식하고 있음을 시사한 발언으로도 보인다. 그러나 우리당이 한나라당과 계속 협상을 할 경우, 특별법에 대한 한나라당의 강한 거부감을 감안할 때 특별법-특검법 패키지 처리는 여야 모두에게 쉽지않은 연말 숙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lesli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