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제트기의 속도는 마하 0.9 정도로 음속보다 약간 느린 것으로 알고 있다.


음속의 두 배로 날려고 하면 엔진의 힘이 두 배로 늘어나면 될 것으로 아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재료공학,기초물리,화학 등 비행기를 제조하는 모든 엔지니어링이 바뀌어야 초음속 제트기로 넘어갈 수 있다.


마하로 진입하기 위해 전체 소재를 바꿔야 하듯 이제 사고 방식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선발에 차이고 후발에 쫓기는 신세가 될 것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2002년 4월 전자 계열 사장단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한 얘기다.


이 회장이 강조한 대로 무한경쟁 시대를 살아가는 기업들이 남보다 한 발 앞서 나가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제품력뿐만 아니라 마케팅 경영지원 애프터서비스 브랜드 파워 등 모든 역량이 뒷받침돼야 한다.


하지만 1등의 과실은 너무도 달다.


강력한 시장지배력을 통해 가격을 형성할 수 있는 '권력'을 행사할 뿐만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신규 진입자들에 대한 강력한 진입장벽도 칠 수 있다.


반면 2위,3위로 처진 기업들의 처지는 고될 수밖에 없다.


1등을 따라잡기는커녕 생존을 걱정해야 할 상황에 내몰리기도 한다.


사실상 1등이 모든 것을 독식하는 경쟁구도 아래에서는 냉엄한 적자생존의 원리가 작동할 수밖에 없다.


불황이 닥쳐도 1위는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어느 정도 손실을 감수하면서 경쟁사들을 따돌리는 기회로 활용하면 된다.


예를 들어보자.세계 휴대폰업계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는 노키아는 지난 2002년 32억달러의 흑자를 냈다.


전년에 비해 실망스러운 실적이었다.


하지만 같은 해 전 세계 휴대폰업체 전체의 손익은 147억달러 적자였다.


노키아 혼자 독야청청한 것이다.


LCD(액정표시장치) TV에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는 일본 샤프는 지난달 일본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명암비 100만 대 1의 신형 TV를 선보였다.


내로라하는 경쟁사들의 TV 명암비가 10만 대 1을 넘지 않는 현실을 감안하면 가히 족탈불급이라는 감탄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세계 자동차업계의 실질적인 최강자로 떠오른 일본 도요타는 명목상의 세계 1,2위인 미국의 GM(제너럴 모터스)과 포드를 멀찌감치 따돌리고 독주하고 있다.


그러면서 미국 소비자들의 견제심리를 완화하기 위해 측면에서 미국 자동차업계를 지원하는 여유까지 보이고 있다.


올해 도요타가 거둬들일 수익은 GM 포드 다임러크라이슬러 폭스바겐의 수익 전체를 합친 것보다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낸드플래시 분야에서 삼성전자에 추월당한 일본 도시바는 한 순간의 방심으로 블루오션을 내줬다는 회한에 땅을 치고 있다.


이 분야에서 한때 세계 1위였던 도시바는 2000년 이후 삼성의 과감한 투자에 일사천리로 밀리고 말았다.


현재 삼성은 시장점유율 60%로 가격결정권까지 행사하고 있어 경쟁사들의 도전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다.


CDMA(부호분할다중접속) 휴대폰 분야에서 몇 년째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는 LG전자 역시 정상의 자리를 내놓을 마음이 전혀 없다.


한 번 미끄러지면 다시 오르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월드베스트 전략은 시장의 과실을 모든 시장 참가자들이 공평하게 나눠 갖는 것을 부인한다.


현실에서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승부'를 할 기회가 여러 차례 주어지지도 않는다.


두세 번 실패하면 곧장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정크본드 충격에 휩싸인 GM과 포드의 사례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삼성을 비롯한 국내 기업들의 월드베스트 전략은 연구개발(R&D) 역량 강화에 집중되고 있다.


새로운 성장엔진을 발굴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위험을 견딜 수 있는 강한 기술이 있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삼성경제연구소의 류지성 박사는 "월드베스트 제품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한 발 앞서 미래를 내다보는 전략 아래 기술경영을 강화해야 한다"며 "유가와 원자재 가격 등 외부 변수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국내 기업들로서는 R&D를 통해 경쟁력을 높여가는 방법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