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 있는 사람을 만나면 절대자가 무슨 신호를 보내줬음 좋겠어(그래야 속마음을 용기있게 털어놓을 수 있으니까)."(광식)


"남자는 여자랑 잘 때 속마음은 윗도리 안주머니에 넣어두잖아. 목욕탕에서 귀중품 맡겨놓듯이."(광태)


"남자들은 여자를 대할 때 배꼽 위 마음과 배꼽 아래 마음이 있잖아. 그런데 이번엔 위가 움직인 것 같애."(일웅)


김현석 감독의 '광식이 동생 광태'는 세 주인공의 맛깔스런 대사와 감각적인 연출로 꾸며진 로맨틱코미디다. 이 작품은 철저히 남성의 시선으로 여성을 바라보는 양식을 취한다. 여자들은 남자들의 태도에 따라 반응할 뿐이다.


짝사랑을 즐기는 소심한 로맨티스트 광식(김주혁). 육체관계만 탐닉하는 바람둥이 광태(봉태규),양자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광태 친구 일웅(정경호)은 연애에 임하는 세 가지 타입의 남성을 형상화한 캐릭터다. 그런데 그들은 극단적인 감정으로 밀어가지 않고 어느 시점에서 자기 방식대로 적절히 갈무리할 줄 안다. 소위 '쿨'한 정서가 인물들을 지배하고 있다.


마이크 니콜스의 1960년대 명작 '졸업'의 21세기형 패러디 장면에서도 세태의 변화가 감지된다. 광식은 사랑하던 여인의 결혼식장에서 눈물을 머금고 돌아선다. 타산적인 연애가 범람하는 이 시대,결혼식장에서 연인을 가로채 달아날 만큼 용기(?)있는 로맨티스트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연애에 임한 남자의 수줍음과 좌절을 정면으로 다루면서도 무리하게 해피엔딩으로 이끌고 가지 않았다.


연출자의 개입을 알려주는 구성양식과 장면전환기법도 관객들이 신파조 감상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야기가 '광식''광태' 등 캐릭터를 설명하는 단락으로 구성돼 관객들이 한걸음 물러서 감상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또한 여러 에피소드는 스톱모션(인물의 동작이 갑자기 멈춰지고 다음장면이 내닫는 것) 디졸브(두 장면이 순간적으로 겹쳐지면서 장면이 전환됨) 와이프(한쪽 끝의 화면을 잠식하면서 새 장면들이 등장함) 등으로 연결돼 있다.


다만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강력한 사건이 없는 게 흠이다. 광식역의 김주혁은 방송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의 주인공역과는 다른 모습이다. 광식은 카리스마는 없지만 유연하고 속깊은 남성의 매력을 보여준다.


23일 개봉,15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