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민과 전도연이 주연한 '너는 내 운명'(감독 박진표)은 에이즈에 걸린 창녀를 사랑하는 농촌 총각의 순애보를 감동적으로 그려 역대 한국 멜로영화 사상 최대 관객을 동원했다.


이야기의 핵심은 무엇보다 지순한 사랑이 창녀를 변화시키는 과정에 있다.


여기에 가장 크게 기여한 소품은 석중(황정민)과 은하(전도연)를 연결하는 사랑의 매개체인 병우유다.


노총각 석중은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동네 다방 종업원 은하에게 첫눈에 반한 뒤 매일 새벽 그녀에게 병우유를 배달한다.


그는 자신이 키우는 소에게서 직접 짠 우유를 투명한 유리병에 담아 식지 않게 품에 넣어 그녀의 집 앞에 갖다 놓는다.


처음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쏟아버리던 은하도 서서히 우유와 그 옆에 놓인 빨간 장미에 흔들리고 만다.


투명한 유리병에 담긴 따끈한 우유는 관객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지금은 원가 절감과 유통상의 편리함으로 팩에 담긴 우유가 보편화됐지만 지난 1970년대까지만 해도 병우유가 각광받았다.


두꺼운 유리병에 담긴 하얀 우유는 신선하고도 고소했다.


특히 겨울철에는 따뜻하게 데워져 판매돼 팩우유보다 친근한 느낌을 줬다.


요즘 영화를 본 일부 관객들은 영화사로 연락해 병우유의 구입처를 묻는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병우유를 생산하는 업체들이 생겨났다.


일회용품 절감 풍조와 병우유에 대한 향수가 커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지난 여름부터 판매하기 시작한 '숲골'이 대표적이다.


이 업체는 병우유를 전국의 생협과 유기농 관련 쇼핑몰,일부 백화점,홈페이지(www.soopgol.com) 등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


가격은 1ℓ에 4200원으로 일반 우유에 비해 2~4배 비싸다.


그러나 호응은 대단하다.


분유나 안정제 등을 첨가하지 않고,탈지유가 아닌 원유를 사용해 신선하고 고소한 추억의 병우유 맛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