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성장을 위한 개혁 없인 사회 복지도 없다.' 유럽연합(EU) 25개 회원국 정상들이 27일 영국 런던 근교 햄프턴코트에서 비공식 회담을 갖고 세계화의 물결에 적응하기 위한 유럽식 사회모델 개편 문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인다. EU순회 의장인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주도하는 이번 정상회의는 결론을 도출하는 자리는 아니지만 유럽이 저성장·고실업의 고질적인 유럽병을 치유하려는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복지중심에서 성장중심으로 경제정책의 기조를 바꿀 수 있는 공감대 마련이 관심이지만 기존 모델 고수를 주장하는 국가도 많아 격론이 예상된다. ◆고조되는 위기의식 2001년 이후 EU의 경제성장율은 1-2%인데 반해 EU 25개국의 평균 실업률은 8.7%에 달한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는 지난7월 "과감한 개혁이 없을 경우 20년 뒤에는 유로존의 성장률이 현재의 반토막으로 추락할 것"이라며 유럽경제에 '희망이 없다'고 경고했다. EU는 세계화의 가속으로 저성장·고실업의 구조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때문에 세계화에 대처할 수 있는 경제개혁이 절실하다는 자가 진단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주제 마누엘 바로수 EU집행위원장은 유럽정상회의를 앞두고 영국 일간 '더 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세계화에 정면 대응하지 않고 우리 아이들에게 탁자 밑에 숨어 스스로를 보호하라고 가르쳤다가는 유럽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영국경제인연합회의 딕비 존스 사무총장도 "정책과 사고에서의 근본적 대수술을 감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개혁의 시각차 EU정상들은 개혁의 필요성을 공감하면서도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미세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유럽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은 연구개발 투자 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차기 총리로 내정된 앙겔라 메르켈 기민당 총재는 최근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실업수당을 줄이고 연금수령 연한을 높이는 방향으로 복지정책을 추진하되 연구개발 투자를 늘려 고용인력을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메르켈 총리 내정자는 앞으로 기업인을 중심으로 '혁신과성장위원회'를 구성,연구개발 분야를 결정할 계획이다. 블레어 영국 총리는 EU예산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농업보조금을 삭감하는 대신 이 돈을 연구개발에 투자하자는 입장이다. 지금과 같은 후진적인 예산구조로는 유럽의 경제혁신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하지만 유럽 최대의 농업국가이자 농업보조금을 가장 많이 챙겨가는 프랑스는 농업보조금 삭감에 반대하고 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25일 EU 25개 회원국 주요 신문의 의견란에 동시 게재한 글에서 "EU의 기본모델은 사회적 시장경제가 돼야 한다"며 "유럽이 단순 자유무역지대가 되는 것을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또 연대의 원칙에 입각해 새 유럽 프로젝트에 착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유럽지역에서 5900명을 감원하겠다고 발표한 HP에 대해서는 "유럽 국가들이 HP같은 기업들이 인력감원하는 것을 막아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프랑스는 그러나 국내적으로는 노동법개혁 및 공기업 민영화 등의 방법으로 경제개혁에 나서고 있다. 김호영 기자 h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