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그린스펀과의 18년은 축복"‥ 이젠 전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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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1월31일 임기가 끝나는 앨런 그린스펀 미 FRB 의장(79) 집무실은 워싱턴DC 백악관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다.
지리적으로 가까워 수시로 백악관을 들락거렸지만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훼손시켰다는 비판을 받지 않았다.
폭발력있는 경제 사안을 섬세한 통화정책으로 슬기롭게 해결해 금융시장의 마술사,경제 대통령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지나치게 모호한 발언으로 때로는 시장에 혼선을 빚었고 2000년대 초 거품붕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물가안정 속 경제성장 달성
그린스펀의 위기 극복 능력은 탁월했다.
그는 1987년 취임 직후 맞이한 주가 폭락 사태인 '검은 월요일'을 비롯해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공황으로 일컬어지는 저축대부조합(S&L) 파산사태 △1994년 멕시코에서 시작돼 동아시아(1997년) 러시아(1998년) 아르헨티나(2002년)로 이어진 세계 금융위기 △미 경제에 직격탄을 날린 9·11 테러 등 잇따른 위기를 겪고도 안정적인 경제 성장을 이끌어냈다.
그는 민감한 경제적 사안들에 대한 '섬세한 조율'을 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실제로 그린스펀 재임 기간 중 미국은 가장 안정적인 경제 성장을 누릴 수 있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그의 재임 기간인 1987~2004년 중 미국의 매년 경제성장률은 이전과 다음 연도를 포함한 3년간의 평균치 대비 ±1%포인트를 넘지 않았다.
근원소비자물가 상승률(에너지·식료품 가격 제외)도 평균치 대비 ±0.5%포인트에 불과했다.
경기의 급격한 과열이나 냉각이 없었다는 얘기다.
FRB의 독립성은 그린스펀 재임기간 중 한층 확고해졌다.
지난 92년 대선을 앞둔 조지 부시 행정부가 선거를 의식,그린스펀에게 통화량을 늘릴 것을 요청했다가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대선에서 승리한 빌 클린턴 대통령도 금리 인하를 요구했지만 역시 거부당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그린스펀은 94년 2월부터는 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직후 의사록을 공개,통화 정책의 투명성 제고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남겨진 과제
그린스펀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경상수지 적자를 막아내지는 못했다.
지난해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6%(약 6680억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고 올해는 더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90년대 말 나스닥 열풍으로 대변되는 주식시장 거품과 2000년대 초의 거품 붕괴, 최근의 집값 급등에 대한 대처도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최근 3년간의 저금리 정책은 미국내 가계부채가 GDP 대비 90% 수준으로 급증하는 데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다는 비난을 듣고 있다.
일부 경제 전문가들은 "증시 거품 붕괴 이후에 정책 금리를 사상 최저인 1%로 낮추고 장기간 이를 지속하는 바람에 최근의 집값 거품이 유발된 것"이라며 "경제 성장과 물가 안정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그린스펀 의장이 부동산과 주식 시장의 거품을 용인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유영석 기자 yoo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