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놀랐다.


5성급 '인터컨티넨탈호텔 서울'의 와인 총책임자가 이제 겨우 스물아홉 살의 아가씨라는 사실에.


프랑스에서 정식으로 와인에 대해 배운 엄경자씨는 이 호텔에 있는 30~40대 남성들을 모두 제치고 소믈리에로서는 최고의 자리에 앉았다.


"처음 와인 맛을 본 것이 스무 살 때였어요.


남자친구와 그저 그런 레스토랑에서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레드 와인을 마셨는데 달콤하고 황홀했던 기억이 나요." 이날 이후 엄씨는 와인을 고를 때면 '스무 살 첫 와인의 느낌'을 떠올린다.


그는 대문을 열면 '단종묘'가 보이는 강원도 영월의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소믈리에'라는 말이 있는지도 몰랐다.


"3학년에 올라가니 슬슬 걱정이 되더라고요.


불어가 좋아서 불문과에 입학했는데,선생님 되는 것 말고는 전공을 살릴 길도 없고." 그래서 엄씨는 와인에 대해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불어'를 써먹기 위해 와인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프랑스로 건너간 엄씨는 와인의 본고장 보르도의 'CAFA'라는 와인 스쿨에 입학했다.


'암기'에는 자신이 있었던 그녀였지만 문화적 차이와 경험의 간극을 메우기는 쉽지 않았다.


"교수가 한 와인을 보여주며 '배(pear)맛'이 난다고 말했어요.


맛을 봤는데 제가 알고 있는 배맛과는 완전히 다르더군요.


아무리 먹어봐도 '설익은 고구마맛' 같은데 그들에겐 그게 배맛인거죠."


수천 가지 와인의 맛과 향을 와인 이름과 대응시키는 것부터 만만치 않았다.


엄씨는 'A와인:프랑스에서는 '배맛'-한국 맛으로는 고구마맛' 하는 식으로 노트를 만들어야 했다.


들어가기는 쉽지만 나오기는 간단치 않은 프랑스 와인 스쿨을 1년 만에 수료하고 2001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서 소믈리에가 일할 곳은 많지 않아요.


와인 전문 바가 늘고는 있지만 경력을 제대로 쌓으려면 특급호텔에 진출하는 게 지름길이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인터컨티넨탈호텔에 이력서를 보냈다.


그녀는 당돌하게도 인사부가 아니라 호텔 총지배인 앞으로 직접 보냈다.


이 호텔 인사부 관계자는 "총지배인에게 이력서를 보낸 사람은 엄씨가 최초이자 마지막일 것"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그 이력서는 프랑스인 제럴드 무트 식음료부 총괄이사의 눈에 들었다.


최단 코스로 와인 총책임자 자리에 오르는 과정에서 엄씨는 '디디에 다그노'라는 프랑스 화이트 와인을 국내에 처음 소개해 대히트를 시키는 등 타고난 감각과 실력으로 나이 핸디캡(?)을 극복해냈다.


그녀는 와인의 새로운 산지로 뜨는 미국 나파밸리를 자비로 체험하고 돌아올 정도로 와인에 대한 신지식을 습득하는 데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이젠 이 호텔 '와인 곳간' 열쇠를 제가 맡은 데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어요."


엄씨는 내년쯤 보통 사람들이 와인에 친숙해질 수 있는 가이드북을 만들기 위해 실전 경험(?)을 매일 일기 쓰듯이 꼼꼼히 메모한다며 베스트 셀러가 될 터이니 두고 보라고 말했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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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인 주문때 소믈리에와 상의하세요! ]


1.음식을 먼저 고르고 음식에 맞는 와인을 추천해 달라고 한다.


혹은 본인이 선호하는 맛을 밝히는 것도 좋다.


2.소믈리에에게 본인이 지출 가능한 요금대를 미리 살짝 알려주면,비싸지 않으면서도 가격 대비 질이 좋은 와인을 추천해 준다.


3.소믈리에가 와인을 따라 줄 때는 소주나 맥주를 받듯이 와인 잔을 직접 들지 말자.소믈리에가 움직이며 고객의 바로 오른편에 서서 와인을 따르기 때문이다.


4.소믈리에가 테이블을 떠난 후에는 상대방의 와인 잔이 비지 않도록 계속 첨잔하여 와인 잔의 약 3분의 1을 맞추어 주는 것이 예의.


5.다른 와인을 맛보고 싶을 때는 다시 소믈리에를 불러서 주문을 한다.


여러 번 불러도 전혀 실례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