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경제부처들의 재원조달 애로 호소에도 불구하고 복지 예산의 가파른 증대를 '양보할 수 없는 공약 사항'이라며 밀어붙이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정치권 출신의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복지예산 확충론을 주창해온 데 이어 이해찬 국무총리도 최근 "기존 재정 계획을 구조조정해서라도 사회안전망 관련 예산을 늘려 편성하라"며 지원 사격에 나섰다. 가뜩이나 세수가 부족해 2년째 10조원에 가까운 적자 국채를 발행하면서까지 복지 관련 예산을 확대 배정,'성장동력 확충 노력이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아 온 현 정부가 '분배 중시'의 색깔을 더욱 뚜렷이하고 있는 것. ◆'복지 우선' 깃발 든 총리 이해찬 국무총리는 지난 26일 고위 당정회의 직후 열린 총리실 확대간부회의에서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를 강하게 질책했다. 복지부가 발표한 사회안전망 예산 확보를 놓고 재경부와 기획처가 '핑퐁'을 치며 미루고 있다는 게 이유였다. 이 총리는 "(재경부와 예산처로부터) 놀림빵을 당했다. 장관을 해임해서라도 하겠다"는 원색적 표현을 쓸 정도로 격노했다고 한다. 고위 당정회의에서 내년부터 오는 2009년까지 빈곤층 지원 등 사회안전망 대책에 총 8조6000억원을 투입키로 했으나 재원 마련을 놓고 재경부는 "예산처가 지출을 줄여라",기획처는 "재경부가 세금을 더 걷어라"는 식으로 서로 책임을 떠넘기자 작심하고 꾸짖었다는 것. 김근태 장관도 경제부처들의 소극적 태도에 대해 비판의 화살을 잇따라 겨눠 왔다. 최근 한 라디오 방송에서 "복지부를 비롯한 사회부처는 복지 확충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경제부처는 돈이 없는데 어떻게 하느냐는 입장"이라며 "그런 경제부처가 연초에 소득세 1%포인트,법인세 2%포인트를 내려 세수를 4조원 정도 축소시켰다"고 반박했다. 그는 또 "(그런 경제부처의 정책이) 참여정부의 정체성과 부합하느냐에 대해 개인적으로 비판적"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성장예산 축소 논란 일듯 이 총리와 김 장관으로부터 연쇄 공격을 받은 재경부와 기획처는 일단 꼬리를 내렸다. 재경부 간부는 "총리께서 복지예산 마련에 좀 더 신경을 쓰라는 독려 차원에서 지적한 것으로 안다"며 "앞으로 예산처와 긴밀히 협의해 재원 마련에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해방 기획처 예산실장도 "복지부가 발표한 사회안전망 대책의 재원 조달 문제는 계속 고민 중"이라며 "중·장기 재정운용 계획을 짤 때 반영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내심으론 막대한 복지예산 조달에 난감해하고 있다. 재경부 관계자는 "작년 4조3000억원,올해 4조6000억원,내년엔 7조8000억원의 세수 부족이 예상되는 마당에 복지부에선 계속 복지사업 계획을 쏟아 내고 있다"며 "그걸 모두 충족시키려면 세수 부족 규모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예산처 관계자도 "국방 예산도 계속 늘려야 하고 각 부처별 세출을 줄이거나 민간자본유치(BTL) 사업으로 돌릴 재정 사업을 발굴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며 "앞으로 급증할 재정 수요를 감안하면 적자 국채를 발행하거나 추가 세원을 발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차병석·김혜수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