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방침을 따른 것이 화근이 됐나 봅니다. 기가 막힐 뿐입니다." 금융산업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개정안이 국정감사 최대 이슈로 부각되면서 법률 적용의 당사자인 삼성이 반론을 제기하고 나섰다. 삼성은 26일 '금산법 관련 쟁점사항'이라는 자료에서 '정부의 봐주기 의혹' 등 현재 금산법 개정안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각종 논란들이 답답하기만 하다며 "삼성카드가 에버랜드 지분을 취득하게 된 것은 순환출자구조를 일부러 만들려 했던 것이 아니라 공정거래위원회의 명령에 따른 계열분리 과정에서 빚어진 일"이라며 "금산법을 위반하거나 피해갈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삼성 관계자는 "보유주식 강제매각은 소급입법일 뿐만 아니라 '신뢰보호'와 '과잉금지'의 원칙에도 정면으로 위배된다"며 "과거 법적 안정성을 믿고 해놓은 거래가 새로운 법에 의해 규제된다면 어떤 기업이 안심하고 경영을 하겠느냐"고 토로했다. 현재 금산법과 관련해 문제가 되고 있는 주식은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7.25%)과 삼성카드의 삼성에버랜드 지분(25.6%) 등으로 금산법 24조는 대기업 금융사의 계열사 지배를 제한하기 위해 금융사가 5%를 초과해 취득하는 계열사 주식은 금융당국의 사전승인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부 방침을 따랐을 뿐인데' 삼성은 "금융사들이 계열사 지분을 취득하게 된 배경은 총수 일가의 경영권 유지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며 오히려 정부의 계열분리 명령에 따른 것이었다"고 강조하고 있다. 실제 삼성카드가 에버랜드 지분을 소유하게 된 이유는 1998년 말 공정위의 중앙일보 계열분리 명령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삼성 계열사였던 중앙일보는 금산법 시행(1997년 3월) 이전부터 에버랜드 지분(17.1%)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계열분리에 따라 이 지분을 카드 및 캐피탈로 넘기게 됐다. 그후 카드는 1999년 에버랜드의 유상증자에 참여하고 지난해 캐피탈과의 합병 등을 거치며 현 지분을 유지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또 생명은 우량사에 대한 투자 차원에서 법시행 당시 이미 8.6%에 달하는 전자 지분을 소유하고 있었으나 그후 지분율이 계속 떨어지고 있어 금산법 위반과는 거리가 멀다고 강조했다. 금융감독위원회는 지난 7월 생명이 당국의 승인 없이 보유할 수 있는 전자 지분한도를 8.6%로 정한다고 발표했었다. ◆'명백한 소급입법이다' 참여연대 등은 "법 시행 이전에 취득한 주식이 위법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라면 이에 대한 처분 명령은 현재의 위법상태를 시정하기 위한 것이므로 소급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하지만 삼성은 금산법 24조가 보유금지 조항이 아니라 승인을 받아 취득하라는 내용이므로 소유권의 효력과 상관관계가 없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과거의 위반사실에 대해 새로운 규제를 가하는 것은 명백한 소급입법이라는 것이다. ◆'법적 안정성도 훼손된다' 삼성은 "행위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던 강제처분 명령을 사후에 신설하는 경우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않으려는 법적 신뢰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상거래의 법적 안정성과 신뢰보호 원칙이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금산법 24조의 입법취지가 '계열 금융사를 통한 지배력 확장 방지'에 있는 만큼 의결권 제한만으로도 법익을 충분히 실현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산권의 본질적 부분을 침해하는 매각명령을 소급해 적용한다면 이는 '과잉금지'의 원칙을 위배한다고 설명했다. ◆'에버랜드주식 어디에 팔라고' 삼성은 설령 강제매각 명령이 떨어질 경우라도 에버랜드 주식을 처분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고 밝혔다. 비상장사로 가격산정이 어려운 데다 경영권이 없는 소수 지분이어서 원매자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 삼성생명 주식매각이 지난 5년 동안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도 동일한 이유에 따른 것이라는 설명이다. 계열사에 매각하는 방식 역시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금지,출자총액제한 규제 등에 따라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