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총선 결과 제1야당인 기민련(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이 신승을 거둔 것으로 나타나자 독일 경제계는 "기대했던 경제개혁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며 실망하는 모습이다. 시장경제와 경쟁을 강조했던 기민련은 지지율이 예상에 못 미쳐 개혁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기가 부담스러워진 반면 근로자 해고 등에서 노조와 같은 목소리를 내왔던 집권 사민당은 앞으로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유르겐 투만 독일경제인연합회 회장이 19일 "이번 총선 결과는 경제계 입장에서는 아주 실망스러운 것"이라고 평가한 것은 이 같은 기류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독일 경제계는 또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이끄는 사민당이 선거 과정에서 부유세 신설 등 복지 관련 공약을 대거 내세웠던 것이 경제 회복을 후퇴시키는 결과를 초래할지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독일 정치권도 상당기간 불확실성이 큰 안개정국 속에서 표류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기민련과 사민당이 모두 과반을 넘기지 못함에 따라 이들 간의 대연정을 포함,다양한 연정 시나리오가 제기되는 가운데 주도권 쟁탈이 치열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독일 경제계에서는 기민련과 사민당의 경제정책이 상반되는 만큼 연립 정부를 어떻게 구성하더라도 색깔 없는 정책이 쏟아져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경제계 '대연정은 최악' 현재로서는 사민당과 기민련의 대연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가장 높다. 정국을 가장 확실하게 안정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일 경제계는 대연정은 독일 경제에 최악의 카드가 될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사민당과 기민련의 정책 차이가 큰 데다 카리스마가 부족한 앙겔라 메르켈 총재가 달변의 정치인 슈뢰더 총리에게 휘둘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메르켈 총재가 공약한 임단협 체결권을 산별노조에서 개별 기업에 부여하는 것이나 기업의 자유로운 해고권은 대연정 체제에서는 실현되기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사민당은 기업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표방하고 있는 기민련의 입장에 반대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도이체방크 애널리스트인 버언트 마이어는 "총선 결과에 대해 시장은 부정적으로 반응할 것이며 금융시장은 이미 우려감을 나타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유럽금융시장에서 이날 달러·유로 환율은 장중 한때 유로당 1.2126달러를 기록,7주 만의 최저치로 떨어졌다. 골드만삭스의 디르크 슈마허 이코노미스트는 "대연정은 독일 경제에 스태그플레이션을 가져올 것"이라고 극단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경제정책 조율 진통 클 듯 기민련을 이끌고 있는 메르켈 총재는 경제계의 큰 기대를 받았다. 그가 신자유주의적 기조 아래 시장경쟁 원칙을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앞세우는 독일의 전통 노사관계도 자유로운 고용과 해고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바꿔 가겠다고 공언해왔다. 메르켈 총재는 총선 직전에는 하인리히 폰 피어러 전 지멘스 회장을 총리 경제자문관으로 임명하겠다고 밝혀 독일 경제계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지멘스 도이체방크 등 독일 대표기업 총수들도 메르켈 총재에게 우호적인 입장을 보였다. 반면 슈뢰더 총리는 사회보장과 실업수당을 축소하는 내용의 '아젠드 2010'을 앞세워 개혁을 추진해 왔으나 실업자 증가,성장률 하락 등 경제 성적표는 좋지 않았다. 특히 경영실적이 좋더라도 근로자 해고가 많는 기업을 적대시해 경영자들과 불편한 관계에 있었다. 여기에 총선을 앞두고 근로자 표를 끌어모으기 위해 부유세 신설 공약을 내세우는 등 개혁보다 여론용 정책을 쏟아내 경제계의 반발을 샀다. 김호영 기자 h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