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를 뽑거나 청소하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정말 죽을 맛입니다."
"일손을 놀려도 임금은 다 줘야 해요. 입장이 바뀌어 우리가 파업으로 생산라인을 스톱시켰다면 피해를 고스란히 물어줘야 했을 것입니다."
태풍 '나비'의 영향으로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던 6일.현대자동차 협력업체가 몰려 있는 효문공단은 궂은 날씨만큼이나 위기감으로 가득했다.
공단 초입에서 만난 A사 공장장은 "파업 때문에 막대한 손실을 입고 있는 데도 납품업체 입장에서 이러쿵저러쿵 말도 못하고 곤혹스럽기 짝이 없다"고 털어놨다.
그는 "파업 계획에 따라 조업시간을 조절해야 하는데 파업 일정이 늦게 잡히는 날에는 아예 다음날 조업 계획조차 세우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답답해 했다.
이 공장 근로자들은 이날 오전에도 4시간 동안 조업을 중단한 채 공장 안 이곳저곳을 청소하면서 시간을 때워야 했다.
공장장의 안내로 아반떼XD용 도어트림 생산 라인에 들어섰다.
평소에는 주·야간 각각 30명의 근로자와 기계가 바쁘게 돌아가며 하루 1100개의 도어트림을 만들어냈지만 이날은 멈춰선 기계 옆에 완제품을 운반하는 간이차량이 줄지어 늘어서 있을 뿐이었다.
"제품의 덩치가 크다 보니 재고를 보관할 곳도 없고 그냥 아무렇게나 쌓아두면 변형이 생겨 못 쓰게 되니 조업을 강행할 수 없는 처지"라는 게 회사측의 설명이다.
이 회사는 추석 전까지 파업사태가 타결되지 않을 경우 매출 손실이 200억원대에 달할 것으로 우려했다.
A사 인근의 S사도 사정은 같다.
머플러와 배기가스 정화장치 등을 납품하는 이 회사는 조업 대신 안전교육과 장비수선 청소 등으로 메우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 회사의 한 관계자는 "조업 단축으로 매일 큰 폭의 매출 손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은 물론 조업을 못해도 임금은 정상적으로 줘야 하기 때문에 두 배로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투싼에 들어가는 보닛 등을 만드는 D사에서는 파업이 길어지면서 임직원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각종 기계가 빼곡하게 들어찬 프레스와 용접 라인을 살펴보니 평소 불꽃을 튀기면서 쉴새없이 몸을 놀렸을 27대의 용접로봇은 고장이라도 난듯 멈춰서 있었다.
프레스 라인에서만 '쿵쿵' 부품을 찍어내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릴 뿐이다.
물론 어느 정도 재고 물량을 갖고 있어도 괜찮은 부품이다.
이 회사 공장장은 "지난주부터 잡초 뽑기와 청소 안전교육 등으로 조업 단축 시간을 채우다 보니 직원들의 사기가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면서 "특히 추석을 앞둔 시점에서 잔업과 특근 중지로 추가 수입까지 줄자 현대차 노조에 대한 원성이 자자하다"고 전했다.
이 회사 근로자들은 같은 시간을 일해도 임금이 현대차 근로자들의 60~70%에 불과한 실정이다.
그마나 1차 협력업체들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규모가 영세한 2,3차 협력업체들은 추석을 앞두고 자금 압박이 심해지면서 줄도산의 공포에 휩싸여 있다고 공단 임직원들은 전했다.
한 협력업체 임원은 "파업이 끝나면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잔업과 특근시간을 늘려야 하는데 회사 입장에서는 그만큼 추가 비용 부담만 떠안는 꼴"이라며 "모기업 노조의 무분별한 파업에 협력업체들만 골병이 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울산=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