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케인 카트리나 대재앙 이후 뉴올리언스 등지에서 약탈과 방화, 총격전, 성폭행 등 무법과 혼란 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조지 부시 대통령와 고위 각료들의 부적절한 대응과 처신 논란, 인종 갈등 문제 등 미국이 안고 있는 뿌리 깊은 분열과 결함을 드러내고 있다. 최대 피해 지역인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 미시시피주 빌럭시에는 정규군과 주방위군이 질서 회복에 나섰는데도 여전히 치안이 불안하고, 구조및 구호활동까지 지연돼 주민들의 불만과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3일 생방송으로 중계된 주례 라디오 연설을 통해 카트리나 피해지역에 정규군 7천명과 주방위군 1만명을 추가 파견할 계획을 밝히고 5일 피해 지역을 다시 시찰키로 했으며, 고위 각료들도 가세하는 등 정면 돌파로 사태 수습에 나섰으나 카트리나 후유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인종ㆍ 빈부 갈등 심화 뉴올리언스 도심 일대에서 벌어지는 약탈과 방화는 그간 미국 사회에 잠재돼 있던 해묵은 인종 차별과 경제적 차별에 따른 분노가 일거에 표출된 결과로, 카트리나로 인한 천문학적인 물적 피해와 엄청난 인명 피해 외에도 해묵은 흑백 인종갈등 문제가 서서히 수면위로 부상할 것이라고 서방 언론들이 보도했다. AFP는 3일 "부시 행정부의 카트리나 재앙 대처 방식을 보면서 극히 민감한 인종문제가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공론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비판론자들은 부시 행정부가 흑인과 빈곤층들을 사망 직전과 무정부상태로 방치 하고 있다면서 이번 재해의 최대의 피해자가 흑인이라고 주장했다. 뉴올리언스 전체 인구 48만5천명 중 약 10만명이 대피하지 않았고, 이들 중 다수가 해수면 보다 낮은 지대의 빈민가에 사는 흑인들이다. 로이터 통신은 "대부분의 백인들이 대피를 했음에도 가난한 흑인은 잔류를 택해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며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이 가진 어두운 그늘이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일부 흑인들 인육 먹었다" 드러지 리포트는 이날 다른 언론 매체 보도를 인용, "뉴올리언스에서 흑인 허리케인 피해자들 가운데 생존을 위해 인육을 먹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있다"고 전했다. 드러지 리포트에 따르면, 자신을 올해 64세의 흑인이라고 소개한 미국인은 "카트리나가 지나간지 나흘이 지난 지금 뉴올리언스에서는 수천명의 흑인들이 개처럼 살아가고 있다"면서 "아무도 우리를 도와주려 하지 않고 있다. 미국 인종분쟁 역사가 귀로에 섰다"며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나 미국의 주요 언론과 정부기관들은 이같은 주장에 대해 보도하거나 확인하지 않고 있다. ◇ 뉴올리언스 혼란상황 지속 극도의 혼란에 빠졌던 뉴올리언스는 장갑차를 앞세운 주방위군이 진입하면서 질서를 회복해가고 있으나 아직도 도심지에서는 치안부재의 무법과 혼란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3일 "카트리나 참사를 피해 집을 버리고 피난나온 사람들은 슈퍼 돔 등 두곳의 임시 거주지에서 자행된 강간과 살인, 주방위군들의 잦은 총질에 몸서리를 치면서 그곳은 폭력과 테러가 난무하는 곳이라고 치를 떨었다"고 전했다. ◇ '부시 책임론' 증폭 뉴올리언스 피해규모가 상상을 초월하면서 뉴올리언스 참사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늑장대응과 부적절한 처신에 대한 비난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현지 언론들은 피해지역 방문은 부시 대통령이 당연히 해야 할 일임에도 불구, 여론에 떼밀려 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으며 허리케인이 남부지역을 할퀴고 간지 나흘뒤인 지난 2일에야 비로소 피해 지역을 둘러봤다고 지적했다. 피해주민을 위로하려고 왔다는 부시 대통령은 정작 약탈과 방화로 무법지대가 된 뉴올리언스 도심지역과 수만 명의 이재민들이 임시 수용된 컨벤션 센터, 슈퍼 돔은 찾아가지 않았다. 특히 뉴올리언스 공항에 잠시 귀착했을 땐 현직 시장만 만나고 공항 터미널에 차려진 임시병원도 방문하지 않은채 워싱턴으로 돌아갔다. NBC 방송은 "부시 대통령이 꼭 살펴봐야할 지역을 뺐다"고 비판했고, 민주당에서도 부시 책임론을 공개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했다. ◇ 주요 각료들 공동책임론 부각 부시 대통령이 이처럼 형식적인 피해현장 시찰로 구설수에 올라 있는데 이어 부통령과 국무장관도 한가하게 휴가를 즐기거나 뮤지컬을 관람했다가 비난 여론에 휩싸였다. 딕 체니 부통령과 앤드루 카드 백악관 비서실장은 당초 카트리나가 멕시코만을 강타할 것이란 예보가 나온 상황에서 휴가를 계속 즐기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뉴욕 도심에서 쇼핑을 하고 뮤지컬을 관람하다 인터넷에 비난의 글이 쏟아지자 워싱턴으로 급거 귀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부시 행정부 정면돌파 시도 이같은 비난여론이 고조되자 부시 대통령은 5일 또다시 카트리나 피해지를 방문키로 했고, 이에 앞서 럼즈펠드 장관과 마이어스 합참의장은 4일 루이지애나와 미시시피주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앨라배마주의 모빌을 찾기로 하는등 민심수습에 전력을 투구했다. 특히 부시 대통령은 이날 아침 생방송으로 진행된 주례 라디오 연설에서 "지금 어려움에 빠져 있는 우리 동포들을 포기할 수 없다"면서 "카트리나 피해 지역에 기존 병력 4천명 외에 7천명을 향후 72시간내에 추가로 파견할 것"이라고 밝혔다. 부시 대통령은 또 "정규군 외에 1만명의 주방위군을 카트리나 피해지역으로 추가 파견할 계획"이라며 "이렇게 되면 멕시코만 일대에 파견되는 주방위군은 약 4만명으로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처토프 장관은 별도 기자회견에서 미 행정부가 수차례 예고된 참사에 신속하게 대비하지 못했다는 비난 여론에 대해 "이번 일은 최악의 대참사였지만미 정부는 피해지역을 보호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 취했었다"고 반박했다. ◇ 이라크ㆍ아프간 주둔 미군 미시시피 파견 미 공군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주둔중인 공군 300명을 카트리나 피해지역인 미시시피주 빌럭시의 키슬러 공군기지로 보내 기지 피해복구에 나서고 있는 가족들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파견되는 장병들은 모두 키슬러 기지 출신으로 2주내에 귀향하기 시작할 것이며 귀향 장병들 중에는 9월에 임무를 마치고 교대할 예정이었던 인원과 주둔기간이 단축될 수 있는 인원들이 포함돼 있다고 미중부 사령부 데이비드 스몰 공군대변인이 밝혔다. cb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