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4년 전인 지난 2001년8월28일 이건희 삼성회장과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의 반도체 핵심수뇌부가 일본 도쿄에 집결했다. 도시바의 메모리반도체 사업 인수 제의를 최종 결론짓기 위한 모임이었다. 도시바는 삼성전자 반도체 기술의 모태가 됐던 기업.1987년 삼성이 반도체 사업을 시작할 당시만 하더라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지난해 4월에는 현대차가 경영난에 빠진 미쓰비시의 지분인수를 제의받았다. 미쓰비시 역시 현대차에 자동차 생산기술을 전수해준,아버지와 다름없는 회사다. 두 사건 모두 경제적 이유로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거부해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다. 기록에도 남아 있지 않다. 기업 내부의 사사(社史)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한·일 간의 특수관계를 감안하면 결코 가볍지 않은 사실(史實)이다. 올해로 광복 60주년을 맞은 8월 이 얘기를 꺼낸 것은 지난 26일 한일협정과 베트남전 외교문서를 접하면서 든 느낌때문이다. 두 기록의 공통점은 당시 최빈국이었던 한국의 처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우리의 자화상이다. 외교부 관계자들도 외교문서를 검토하며 당시 극빈국이었던 한국의 처지를 간접 체험하고 눈물을 뿌렸다고 했다. 혹독한 식민지 지배를 당하고도 정당한 사죄와 배상을 받지 못한 것이나 다른 나라와 비교해 터무니없는 적은 돈을 받고 이국땅에서 젊은 피를 흘려야 했던 이유가 이 외교문서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역사의 '실패'로 얻어진 결과물을 종잣돈 삼아 한국경제의 자립을 일궈냈다는 점도 역사의 아이러니다.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건설돼 한일협정이라는 태생을 안고 출발한 포스코는 기술적 모태였던 신일본제철을 능가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해방 이후 우리 기업들이 일군 극일(克日)의 기록과 경제지원을 얻기 위해 그 어느 참전국보다 높은 전사율을 기록하며 남의 나라 전쟁터를 누벼야 했던 청춘들의 얼굴이 외교문서를 접하면서 교차됐다. 이 역사적 기록들이 한국 산업화과정에서의 어두운 과거 외에 어떤 교훈을 주고 있는지 곰곰히 생각해볼 일이다. 이심기 정치부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