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께서 오늘 오후에 디자인실 방문을 원하십니다. 신차 디자인 컨셉트를 논의하기 위해서입니다. 허가해주십시오."


닉 라일리 GM대우 사장은 디자인실을 방문하기 전에 언제나 이런 번거로운 절차를 거친다.


자신의 ID카드로는 디자인실 출입문을 열 수 없어서다.


'핵심 보안시설을 드나드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정보유출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이유에서 사장도 꼭 필요할 때만 출입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GM대우의 미래형 보안시스템이 산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상당수 국내 기업은 물론 GM 본사까지 일부 시스템을 벤치마킹할 정도다.


산업 스파이가 갈수록 기승을 부리는데다 안기부 도·감청 사건까지 불거지면서 보안이 기업 생사를 가르는 핵심사안으로 떠오른 데 따른 것이다.


GM대우 보안시스템의 특징은 산업보안과 시설 경비 등에 머무르고 있는 국내 기업들과 달리 재난관리 소방방재 사고조사 경호업무까지 수행한다는 것.보안조직 명칭을 '시큐리티팀'으로 정하고 국내 최초로 보안담당 임원(김학수 상무)을 임명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GM의 아태지역 보안 총책임자인 이관희 감사를 정점으로 한 30여명의 시큐리티 관련 인력은 지난 2년간 GM대우의 보안 시스템을 확 뜯어고쳤다.


백봉원 시큐리티팀 부장은 "처음엔 '쓸데 없는 데 돈 쓴다'는 반응을 보이던 직원들도 '수천억원을 들인 신차개발 프로젝트가 외부로 새 나가면 여러분도 기업도 모두 끝난다'는 거듭된 교육에 이제는 하나둘씩 자발적인 '보안관'으로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큐리티팀이 가장 먼저 손댄 부분은 사무실 출입관리시스템.우선 복제가 불가능한 최첨단 ID카드를 전 직원에게 발급하고,사무실마다 ID카드 리더기를 설치했다.


ID카드는 각 직원의 업무 특성을 감안해 출입할 수 있는 곳을 지정해 놓은 게 특징.예컨대 마케팅 담당 직원은 자신의 ID카드로 기획실에 들어갈 수 없다.


특히 연구개발(R&D) 센터 등 핵심 보안지역의 경우 출입문을 5cm 두께의 특수강화 유리 또는 강철로 제작,'대포'를 쏘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도록 했다.


내년 말께는 'X레이 투시기'를 설치,직원들의 가방도 완벽하게 검색한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노트북 휴대폰 등 직원들이 항상 소지하는 물품에는 소유자의 신원정보 등이 담긴 무선주파수 인식(RFID) 태그를 부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외곽경비 시스템도 대폭 개선했다.


들쭉날쭉했던 군산공장과 창원공장의 담벼락의 높이를 2.4m로 맞추는 동시에 펜스 윗부분에 적외선 감지기와 CCTV를 설치한 것.심지어 땅을 판 뒤 지하로 침입할 경우에 대비해 펜스 안쪽 곳곳에도 적외선 감지기를 설치했다.


R&D 등 핵심부서 직원들의 문서 유출에 대한 대응방안도 마련했다.


각자의 PC로 작업하더라도 해당 문서는 공용서버에만 저장되도록 시스템화한 것.개인 PC나 USB 등에는 아예 저장이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1년에 한 두차례 실시하는 모의 소방훈련과 재난훈련도 시큐리티팀 출범과 함께 신설됐다.


갑자기 공장에 불이 나거나 핵심 인력이 납치되더라도 경영진이 당황하지 않고 냉철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이 감사는 "포천 500대기업 중 490개 업체가 시큐리티팀을 둘 정도로 보안은 기업경영의 핵심이 되고 있다"며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신세를 면하기 위해선 한국기업들도 당장 보안에 힘 쏟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