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가내수공업이었죠." CJ홈쇼핑 PD 김태연씨(34)는 10년 전의 홈쇼핑방송 제작을 이렇게 표현했다. 8월1일 첫 방송을 약 한 달 앞두고 PD며 쇼핑호스트를 뽑아 변변한 교육도 없이 바로 제작 현장에 투입했기 때문이라고 김씨는 말했다. 김태연씨는 CJ홈쇼핑의 전신인 '삼구쇼핑'의 첫 방송을 제작한 주인공이다. "그때 아이템은 '뻐꾸기 시계'였던 걸로 기억해요. 합판으로 만든 벽에 뻐꾸기 시계 달랑 하나 붙여 놓고 방송을 시작했죠.'째깍째깍' 시계가 가는 소리가 어찌나 크게 느껴지던지…." 아마 긴장해서 그랬을 것이라고 김씨는 회상한다. 총 7개가 팔렸지만 그중 4개가 사장이 주문한 것을 포함해 회사 직원이 구입한 것이었다. 지금도 CJ홈쇼핑 사장실에는 그때의 뻐꾸기 시계가 보물처럼 걸려 있다. 털털한 성격의 김태연씨에게 첫 시련이 찾아온 것은 첫 방송을 한 지 보름 정도 지난 8월15일 광복절.무심코 선정한 아이템이 하필이면 일본 왕세자비의 이름을 딴 '마사코 브로치'였다. 고객들로부터 항의전화가 수없이 걸려 온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그때 들었던 생각이요? '아,사람들이 우리 방송을 보긴 보는구나. 신기하다'정도?"라고 말하며 익살스런 표정을 지어보인다. "그땐 콜센터에 시청자가 심하게 항의를 하면 담당 PD에게 전화를 돌려버리곤 했어요."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고객불만처리만을 전담하는 팀이 따로 있을 만큼 체계적으로 바뀐 지 오래다. 홈쇼핑 개국 초기에는 서너 개의 상품을 한 프로그램에 몰아서 7분에서 10분 정도 소개하고 다음 상품으로 넘어가는 형식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하지만 이런 형태를 깨고 김씨가 처음으로 시도한 프로그램이 바로 지금은 업계에서 전설로 자리잡은 '신나는 주방'이라는 프로그램.홈쇼핑 최초로 '본격 요리쇼'를 표방,스튜디오를 주방으로 꾸몄다. 이 신나는 요리쇼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제품이 '돌삿갓 요리박사'다. 바로 이 냄비가 김씨에게 첫 히트상품이 되었다. "주방기구를 말로만 설명해서 어떻게 알겠어요. 직접 요리를 하면서 보여주자고 제안했죠.물론 프로그램 시작 전 장보기부터 끝마친 후에 설거지까지 모두 PD의 몫이었습니다." 점차 고화질,대화면 TV가 보급되고 방송장비도 발달하면서 오히려 홈쇼핑 PD는 더 곤욕을 치른다. 예전 같으면 그냥 대충 넘어가도 될 '티'들이 너무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쇼핑호스트 팔뚝에 난 털관리까지 해야 된다니까요"라며 너털웃음을 짓는 김씨.화면을 잘 꾸미는 데 이렇게 신경을 쓰다보니 더 다양해진 볼거리로 '하루 종일 홈쇼핑 방송만 봐도 재미있다'는 시청자도 생겼다고. CJ홈쇼핑의 간판 PD로 회사와 함께 커 온 김태연씨."10년차 PD로서 꼭 하고 싶은 것은 '상품의 약점까지 용감하게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거예요. 회사의 철학과도 맞는 것 같고요." 홈쇼핑방송은 장점을 부각시키고 약점을 감추는 것이 보통인데 PD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자신감의 표현으로 보였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