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해외진출 실패로 사임 압력을 받아 온 위르겐 슈렘프 다임러크라이슬러 회장이 연말에 물러난다. 슈렘프 회장은 지난해 말 안팎의 비난을 무릅쓰고 임기 연장에 성공했지만 대주주 도이체방크로부터도 외면당하자 임기를 2년 정도 앞두고 28일 전격 사임 의사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고급차 벤츠로 유명한 다임러크라이슬러 그룹은 내년부터 구조조정 전문가인 디터 제체 크라이슬러 사업본부장의 손에 맡겨지게 됐다. ◆세계 경영 실패 16세에 기술 실습생으로 다임러벤츠에 입사,1995년 CEO에 오른 슈렘프 회장(60)은 이후 10년간 해외 사업 확장에 모든 힘을 쏟았다. 1998년 미국 3위 자동차회사 크라이슬러를 인수,현 다임러크라이슬러를 탄생시켰고 지난 2001년 일본 미쓰비시 자동차의 대주주로 부상했다. 한국에서도 한때 현대자동차 지분 10.5%를 가진 전략적 파트너였다. 하지만 무리한 양적 팽창은 핵심 경쟁력을 약화시켰고 그 결과 기술 개발과 신차 출시에 투입할 자원이 고갈됐다. 2003년 미국사업이 적자를 낸데 이어 지난해에는 유럽에서 숙적 BMW에 판매량이 추월당하면서 영업이익도 반토막났다. 미쓰비시 자동차 역시 경영난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다임러크라이슬러의 시가총액은 합병 직전 950억유로에서 최근 370억유로로 떨어졌고 슈렘프 회장은 지난해 비즈니스위크 선정 '최악의 CEO'로 꼽혔다. ◆재도약 가능할까 이날 슈렘프 회장의 사임 발표와 함께 공개된 다임러크라이슬러 그룹의 2분기 영업이익은 16억유로로 전년동기(21억유로)보다는 줄었지만 내용면에서는 합병이래 가장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 벤츠 사업부가 흑자전환에 성공했고 크라이슬러도 경쟁사들이 적자를 기록한 상황에서도 흑자를 냈다. 그러나 다임러크라이슬러에는 여전히 문제가 쌓여있다. 소형차 스마트 사업부가 연간 5억유로의 적자를 내고 있는 데다 핵심 사업인 메르세데스벤츠가 올초 지난 3년 동안 판 것보다 많은 130만대의 벤츠를 리콜한다고 발표해 명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비용절감을 위한 감원도 어려운 실정이다. 독일 본사의 노동 계약상 감원을 위해서는 거액의 퇴직금을 지불하고 명예퇴직을 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새 사령탑을 맡은 제체가 이같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크라이슬러 부문에서 그랬던 것처럼 다임러크라이슬러 그룹의 구조조정에도 성공할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