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의욕과잉이 빚은 해프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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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범 산업자원부 장관은 신중함으로 치면 참여정부 각료 중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으로 꼽힌다.
기자들과 편하게 대화하는 오찬간담회나 긴장이 다소 풀어질 수도 있는 맥주파티 등의 자리에서도 말 실수를 하는 법이 없다.
이 같은 신중한 태도는 그가 올초 불거진 러시아 오일게이트의 파고를 넘어 '장수 장관'으로서의 기반을 다지는 데 밑거름이 돼왔다.
그런데 이 장관이 지난 18일 오후 기자브리핑에서 이 같은 명성에 금이 갈 수도 있는 실언을 해 주위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이날 브리핑에선 북한에 전력을 공급하려는 우리 정부의 계획이 이슈였다.
기자들은 "초기 시설투자비용과 이후 송전비용은 어떻게 할 것인가"를 집중적으로 질문했다.
이 장관은 이 질문을 예상한 듯 "초기 시설투자비용은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자금으로 충당하고 향후 송전비용도 우리 경제가 감내할 수 있는 평화유지비용의 범위내에서 우리측이 부담하되,추후 북한과 협상을 통해 결정할 것"이라고 즉각 답변했다.
물론 이 장관은 '평화유지비용'이 워낙 크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무상지원할 것이란 점을 에둘러 표현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구상으로만 보면 '우리 경제가 감내할 수 있는 평화유지비용'에 따라 북한에 전기요금을 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기에 충분했다.
때문에 기자들은 반신반의하면서 문구에 약간의 해석을 녹여 기사를 작성,송고했다.
그런데 오후 늦게 산자부가 이 장관의 발언에 대해 긴급 해명 브리핑을 다시 열었다.
통일부와 협의 후 이 장관의 발언을 "유상지원은 고려한 바 없다.북한에 전력을 공급하겠다는 것은 상당기간 무상지원하겠다는 뜻"이라고 정정했다.
이 장관은 대북 중대제안을 할 때는 소외됐지만 전력 관련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정부의 계획을 국민들에게 좀더 많이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평화유지비용'이란 모호한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혼란을 일으켰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 장관이 의욕만 앞세운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평소 모습으로 돌아가길 기대한다.
박준동 경제부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