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에는 경기가 어느 정도 회복되길 기대했는데 오히려 내수 시장이 더 안 좋아지는 느낌입니다. 그렇다고 수출 실적이 좋은 것도 아니고…." 중견그룹 계열사 K사장은 4일 경기를 이렇게 진단하며 일본식 장기 불황을 우려했다. 이 회사만이 아니다. 국내 기업들의 대다수는 연내 경기 회복은 이미 물건너 갔다고 판단하고 있다. 내년에라도 경기가 살아난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라는 분위기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수도권 제조업체 300개를 대상으로 벌인 '기업이 바라본 경기정책 평가와 성장 전망' 조사에서 37.0%는 내년 하반기에나 본격적인 경기 회복이 이뤄질 것이라고 응답했다. 2007년 이후에야 회복될 것이라는 응답도 22.0%나 됐다. 올해 안에 회복될 것이라는 응답은 고작 9.0%에 불과했다. 내년 상반기에 경기가 살아날 것이라고 밝힌 기업은 32.0%였다. 올해 경제성장률 예상치도 대부분 3%대를 밑돌았다. 3%라고 답한 기업이 26.0%로 가장 많았다. 다음은 2% 전망(21.5% 응답) 2.5% 전망(17.2% 응답) 3.5%(16.8%) 4%(12.8%) 등의 순이었다. 응답 기업 10개 중 8개는 일본식 장기 불황의 가능성도 내다봤다. 65.6%는 경제 침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 일본식 장기 불황이 온다고 답했고 18.7%는 지금 상태에서도 장기 불황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응답은 15.7% 수준.장기 불황을 전망한 기업들은 그 요인으로 △부동산 거품 우려 33.5% △경제심리 불안 26.1% △정부의 부적절한 대응 24.9% 등을 꼽았다. 정부의 경기회복 정책에 점수를 매겨 달라는 질문에 기업들은 5점 만점에 2.47점 정도라고 응답했다. 부문별로 △부동산·건설대책 1.80점 △고용대책 2.34점 △재정정책 2.58점으로 나왔다. 이는 최근 경기 회복을 위한 정부의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효과가 나오지 않고 있는 데다 부동산 시장마저 불안하기 때문이라고 상의는 분석했다. 한 대기업 임원은 "경기 부양의 최선책은 건설경기 회복인데 부동산 시장 문제 때문에 정부에 경기를 띄울 만한 카드가 없다"며 "이 같은 딜레마를 감안하면 앞으로 2∼3년 내 경기 회복은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상의 조사에서 기업들의 69.7%는 내수가 본격 회복되기 전까지 저금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나머지 30.3%는 부동산 과열을 해소하기 위해 당장 금리를 높여야 한다고 답했다. 한편 수도권 규제를 전면 해제하고 기업 환경을 개선할 경우 중국과 국내 수도권 중 어느 곳에 투자하겠느냐는 질문에 전체의 66.4%가 수도권에 투자하겠다고 응답했다. 정부 의지에 따라 중국의 급성장에 따른 국내 제조업 공동화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