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완공된 장충체육관은 국내 최초의 실내 경기장이었다. 최첨단 공법을 적용했고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이 건립 행사에 참석해 축사를 할 정도로 장안의 화제였다.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이 건물을 지은 회사가 필리핀 기업이라는 점이었다. 요즈음 국력으로 봐서는 의아해 할 만한 사안이었지만 당시만 해도 이에 신경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풍부한 천연 자원과 높은 문자 해독률을 자랑하는 필리핀.2차대전이 끝나고 독립한 이후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잘 사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그럼 지금은 어떠한가. 2000년 1인당 국민소득 694달러,1년 후엔 조금 나아져서 1058달러.국내 일자리가 없어 수백만명이 해외에 나가 있는 '세계의 가정부' 국가. 이들이 매년 송금해 오는 60억~80억달러로 경제를 꾸려 나가는 비참한 신세로 전락했다. 부족할 것 없었던 이 나라가 어떻게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 '한국,번영의 길'(공병호 지음,해냄)은 대외 개방을 통해 국내 자원을 활용하는 정책을 구사하지 않고 외자를 규제했던 보호주의에서 원인을 찾는다. '필리핀 인 우선주의를 등에 업은 권력자들은 산업보호 명분으로 높은 관세와 쿼터제를 실시하고 환율을 통제했다. 왜곡된 환율 정책은 수출 업체에 피해를 안겨 주었다. 수입 공장 설비가 상대적으로 싸기 때문에 기계로 노동을 대체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일자리가 줄어 들었다.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된 페소화로 인해 농민이나 중소기업들도 손해를 보았다.' 이 책은 경제 정책의 첫 단추를 잘못 끼움으로써 국민을 가난의 거리로 내몬 필리핀이나 독일,아르헨티나의 실패를 '좌파적 개혁·민중주의의 실험으로 인한 결과'로 규정 짓는다. 그리고 그 사례들을 반면교사로 삼아 '잘 사는' 한국을 위해 나아가야 할 세계관·시스템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1인당 자본 투입량을 늘리고 개인의 노동 숙련도를 높일 것,세금 감면 등 사업하기 좋은 여건 조성,재산권을 보장하는 제도적 뒷받침 등이 부(富)를 창출하는 콘텐츠로 소개돼 있다. 저자는 다시 한번 역동적인 사회로 탈바꿈하려는 한국호로의 승선을 권유한다. 여기에 동의하는 개인이나 공동체에 변화는 필수다. 그러나 대전제가 있다. 바로 '인센티브를 작동하게 만들라'는 것이다. 300쪽,1만원. 김홍조 편집위원 kiru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