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일 취임 한 돌을 맞는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1년을 보냈다. 작년 7월 1일 "대북정책 추진에서 국민적 합의, 초당적 협력을 이끌어내는데 앞장설 것"이라며 취임사를 할 때만 해도 그의 장관직 1년이 그토록 우여곡절을 겪으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8월 3일로 잡혀 있던 제15차 남북장관급회담 때문에 취임 직후부터 북한 공부와 회담 준비를 하느라 매일 오후 남북회담사무국을 찾았고 선배 장관들에게도 조언을 구하며 의욕을 불태웠지만 이내 좌절을 맛봐야 했다. 취임 1주일 뒤인 7월 8일 고(故) 김일성 주석 10주기 조문 문제를 놓고 우리측 민간 대표단의 방북이 불허되면서 남북관계가 급속하게 냉각됐기 때문이다. 엎친 데 겁친 격으로 북한인권법이 미 하원에서 통과되고 탈북자 468명이 한번에 입국하면서 그의 남북회담 데뷔전인 제15차 장관급회담마저 무산됐다. 더욱이 그 해 9월까지 열기로 한 제4차 북핵 6자회담마저 무산되면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까지 겸한 그로서는 이들 난제를 풀기 위해 머릿속이 늘 복잡할 수 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남북 당국간 회담과 6자회담의 동시 재개가 그의 목표가 됐다. 작년 12월 말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 우방궈(吳邦國)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등 중국 고위급과 6자회담 재개 방안을 협의하는 한편, 북을 상대로는 대화재개를 촉구하는 서신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시마네현(島根)현 의회의 조례 제정을 비롯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불거지자 지난 3월 NSC 상임위원장으로 직접 마이크를 잡고 `제2의 한반도 침탈'로 간주하고 강력 대처한다는 `대일 신(新)독트린'을 발표, 강단을 보여줬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선언 등에 따라 위기로 치닫는 한반도 상황 속에서 그가 북측 림동옥 노동당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에게 3차례나 보낸 대화 재개를 촉구하는 서신은 지난 5월 비로소 빛을 보게 됐다. 북측이 5월 14일 전화통지문을 통해 차관급 회담을 재개하자는 우리측 요청에 호응하면서 10개월여에 걸친 당국간 대화 단절의 시기는 막을 내린 것이다. 정 장관이 다음 날인 15일 기자들과 만나 그동안의 답답했던 소회를 밝히면서 연거푸 세 차례 건배를 제안한 것은 그간 속앓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음을 반증한 한 장면으로 꼽힌다. 그 후 5월 16∼19일 차관급 회담은 관계 정상화의 신호탄을 쏘아올렸고 정 장관은 영영 잊을 수 없는 6월을 맞았다. 평양을 방문하고 장관급회담에 데뷔한 것이다. 먼저 평양 통일대축전에 당국 대표단을 이끌고 참석, 지난 17일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5시간 가까이 만나 북핵에 대한 입장을 듣고 다양한 합의까지 이끌어낸 것은 세계적인 관심사가 됐다. 그는 여세를 몰아 지난 21∼24일 장관급회담에서 12개항에 걸친 합의를 보면서 밀린 숙제를 단 번에 해치웠다. 특히 남북 회담장에 직사각형 테이블을 들어내고 원탁을 집어넣은 그의 아이디어는 회담문화 개선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런 흐름 속에 열린우리당의 4.30 재.보선 참패 이후 새어 나왔던 정 장관의 당 조귀복귀론도 쑥 들어갔고 그의 표정도 한결 밝아졌다. 정 장관은 김정일 위원장 면담 및 장관급회담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지난 29일 시작한 방미 일정 때문에 취임 1년을 미국에서 맞는다. 그가 이번 미국 방문을 통해 6월에 일궈낸 남북회담 성과를 바탕으로 6자회담 재개까지 끌어낼 수 있을 지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 정준영 기자 prince@yonhap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