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전 대우 회장의 귀국은 더 늦기 전에 자신과 대우그룹에 대한 공과를 제대로 평가받으려는 취지로 해석할 수 있다. 측근들도 그의 귀국 배경을 대법원 판결에 대한 실망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김 전 회장은 법원이 자신을 해외로 재산을 빼돌린 파렴치한 사기꾼으로 몰고간 데 대해 심한 자괴감을 나타내며 "더 이상 귀국을 늦출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 측근들의 전언이다. 따라서 김 전 회장은 귀국 후 법정 증언을 통해 대우 사태의 전말을 상세히 공개할 것으로 보인다. 김 전 회장은 대법원 판결 가운데 분식회계 부분은 인정할 수 있지만 해외 재산도피나 사기 대출 등에 대해서는 결코 수긍할 수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대법원이 6명의 전 대우 임원들에게 24조원의 추징금을 물린 최종 판결을 내린 지난 4월29일 직후부터 김 전 회장이 대검찰청 중수부에 귀국 의사를 타진해온 것도 그런 이유에서라는 설명이다. 김 전 회장의 오랜 친구이자 법률대리인이었던 석진강 변호사는 최근 베트남 하노이에서 한국경제신문과 가진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김 전 회장은 대법원 판결에 상당히 큰 기대를 걸었으나 결과가 좋지 않아 무척 낙담했다"고 전했다. 김 전 회장이 걸었던 최소한의 기대가 무너지자 더 이상 귀국을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는 것이다. 석 변호사는 이번 판결 이전에도 김 전 회장이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 유·불리에 관계 없이 귀국한다는 결심이었다고 말했다. 아랫사람들이 연루된 재판이 끝나기 전에 자신이 귀국할 경우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김 전 회장이 이런 결심을 굳힌 상황에서 전혀 기대 밖의 판결이 나오자 귀국을 서두르게 된 것이라는 얘기다.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라고 측근들이 전할 정도로 악화된 건강상태도 김 전 회장이 귀국을 결심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해외도피 이전에 이미 뇌수술과 위암수술을 받았던 김 전 회장은 해외 도피 중 장협착증과 동맥경화 협심증 등으로 고통을 겪어왔다. 최근 들어 노환에 신장기능까지 떨어져 수시로 건강을 체크해야 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 회장은 최근 몇몇 경제계 인사에게 전화를 걸어 귀국 문제를 상의하면서 "이젠 늙고 건강도 좋지 않아 더 이상 해외로 떠돌아다니기 싫다"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점으로 미뤄 볼 때 5년8개월 동안 해외로 떠돌아다니며 극도로 건강이 악화된 김 전 회장이 모든 것을 털어 놓고 심적인 부담을 덜어보자는 인간적인 고뇌도 귀국을 결심하게 한 동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김 전 회장의 귀국엔 이 같은 내적요인 뿐만 아니라 대우와 자신의 과는 물론 공도 함께 평가해야 한다는 국내 여론 동향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우출신 인사들의 모임인 '대우인회'와 서울대 386운동권 대우 출신들로 이뤄진 '세계경영포럼' 등이 적극적인 활동에 들어간 점이 큰 힘이 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 전 회장이 귀국해 검찰 조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정·관계에도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옛 대우그룹이 해체 직전 전방위 로비에 나섰던 점으로 미뤄 김 전 회장의 검찰 진술에 따라 거센 '후폭풍'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대우측 인사들은 김 전 회장 귀국이 이 같은 파문으로 확산돼 정치 쟁점화될 것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김 전 회장의 귀국으로 파문이 커지기보다는 대우그룹 해체과정에서 진행된 정책 판단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대우의 공과를 평가받길 원하고 있다. 귀국 전 윤동민 변호사 등 김&장법률사무소 변호인단을 통해 검찰과 수사 일정 등에 관해 의견을 교환한 김 전 회장은 재산을 해외로 빼돌린 사기꾼이란 오명을 벗는데 치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익원·류시훈 기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