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조영황)가 검찰과 경찰의 뜨거운 감자인 `피의사실 공표' 문제에 대해 직권조사를 벌이고 있지만 확실한 방향을 잡지 못해 고민 중이다. 형법 제126조에 규정된 피의사실 공표 조항은 검찰ㆍ경찰 등 범죄수사 기관 종사자가 공판청구 전 피의사실을 공표하지 못하게 하고 있지만 사실상 사문화된 것으로 평가돼왔다. 이런 상황에서 인권위는 지난해 11월 ▲불량만두파동 ▲안상수 인천시장 굴비상자 사건 ▲탤런트 병역비리 관련 사건 등 피의사실 공표로 심각한 인권침해가 우려되는 사례가 발생하자 직권조사에 들어갔다. 사회적 파급 효과가 크고 증거확보가 쉬운 사건들에 대한 직권조사를 통해 피의사실 공표로 인한 인권침해 예방 지침을 제시하고 형법 제126조 규정의 실효성을 확보한다는 차원이었다. 또 수사의 과학화를 유도하고 수사기관 등의 피의사실 공표에 대한 한계설정 등을 모색한다는 계획에 따라 인권위는 각 사건에 대한 자료 수집 등 다각도로 조사활동을 벌여왔다. 이와 별도로 지난 3월초 한화그룹측에서 1천만원짜리 채권 5장을 수수한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은 이부영 전 열린 우리당 의장이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로 인해 피해를 봤다며 낸 진정 사건도 조사가 진행중이다. 그러나 인권위는 피의사실 공표 문제에 대한 전반적인 통제가 자칫 언론 통제로 보여 `국민의 알 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 또 조사 과정에서 참고할만한 선진국의 피의사실 공표에 대한 명확한 지침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인권위 관계자는 "피의사실 공표 문제와 관련해 선진국에도 뚜렷한 지침이 없어 다른 사건보다 더 신중을 기하고 있다"며 "직권조사를 벌여 올 상반기 또는 하반기에나 무언가 지침을 내놓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피의사실 공표 자체에 대해 완전히 규제를 할 수는 없겠지만 개인적 명예훼손 부문 등에 대해 분명한 지침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피의사실 공표 문제의 당사자 중 하나인 검찰은 지난달 `법의 날'을 맞아 수사과정 중 피의사실 공표로 인권침해 사례로 제기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피조사자의 소환사실 공개 및 중간수사 발표 등을 강력히 금지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서울=연합뉴스) 박상돈기자 kak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