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캐논은 요즘 ‘불꺼진 공장’을 연구하느라 여념이 없다.일감이 없어서 노는 공장을 어떻게 처리할까하는 연구가 아니다.캐논의 연구 대상은 완벽한 무인자동화를 이뤄 구태여 불을 켤 필요가 없는 공장이다.24시간 불이 꺼진채로 돌아가는 공장.캐논은 지금 생산현장 인건비 ‘제로(0)’에 도전하고 있다.
미타라이 후지오(御手洗 富士夫) 캐논 사장(70)은 최근 한국경제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캐논의 해외생산 비중은 지금의 40%선에서 더 이상 높아지지 않을 것”이라며 “기계화로 생산이 가능한 고부가가치 제품은 자동차설비를 갖춰 반드시 일본에서 생산토록 하겠다”고 말했다.캐논은 최근 중국내 일부 공장을 일본으로 되옮겨 오면서 일본기업의 U턴(해외생산기지의 국내 회귀) 현상을 주도하고 있다.노동집약적 생산은 해외에서 효율을 극대화하겠지만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제품은 첨단 생산방식을 동원해 ‘made in Japan’을 고수하겠다는 것.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소니를 대신해 ‘전자왕국 일본’의 르네상스를 주도하고 있는 캐논의 미타라이 후지오 사장을 직접 만났다.
-캐논은 5년 연속 사상 최고 실적을 내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비결은 무엇인지요.
"한마디로 말하면 개발력입니다.
경쟁력 있는 제품을 끊임없이 개발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지요.
그 다음은 생산 기술입니다. 좋은 제품을 개발하되 코스트 다운을 통해 이익을 내는 것입니다.
이익을 내야 재투자가 가능하고 재투자를 해야 연구개발력이 높아지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런 선순환 구조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캐논의 실적은 지속적으로 좋아지고 있습니다."
-캐논은 일본 기업의 U턴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는 계속될 것인지요.
"현재 캐논의 해외생산 비중은 40%선입니다.
앞으로도 40∼45%선은 유지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밖에선 캐논이 해외 공장을 국내로 되옮기는 것을 'U턴'이라고 한다지만 잘못된 판단입니다.
U턴이 아니라 '교체'하는 것일 뿐입니다.
기계화를 통해 일본에서 생산이 가능하다면 일본에서 자동화 설비를 갖춰 생산하겠다는 것이지요.
노동력이 꼭 필요한 노동집약적 생산은 해외에서 합니다.
물론 효율성만큼은 극대화해야겠지요.
중국 공장의 역할은 과거와 달라졌습니다.
지금까지 중국 공장은 수출을 위한 것이었지요.
하지만 이제는 중국 내수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역할이 더 커졌어요."
-앞으로도 중국에 새 공장을 짓겠다는 뜻입니까.
"물론입니다.
필요한 제품이 있다면 중국에 더욱 많은 공장을 지을 겁니다.
중국은 고소득층이 늘어나면서 시장이 좋아지고 있어요.
커지는 시장에서 생산을 늘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중국 공장을 일본으로 되옮겨온 것은 U턴이 아니라 공장을 기능에 따라 재배치하는 것으로 보면 됩니다."
-캐논은 일본식 종신고용제를 지켜가면서도 미국식 성과주의를 성공적으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종신고용제를 언제까지 유지해 나갈 생각이신지요.
"종신 고용은 1937년 창립 때부터 지켜온 경영 이념입니다.
끝까지 지켜갈 생각이에요.
캐논은 모든 사원이 안심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회사를 '이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종신고용제는 그런 면에서 좋은 제도이고 유지해 갈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종신고용제의 장점은 사원을 교육시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지요.
서구식 고용제도는 사원의 이동이 잦아 개인에 대한 투자를 하고 나면 낭비가 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종신고용제에선 사원에 대한 투자가 곧 회사 경쟁력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회사 능력이 커질 수 있는 것이지요.
또 하나,종신고용제하에선 회사에 대한 사원들의 충성심이 강합니다.
모두 자기 회사라고 생각하지요.
서로간에 신뢰가 생기고 커뮤니케이션이 잘돼 경영자의 철학이 쉽게 전달되고 실천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물론 나쁜 점도 있습니다.
사원들이 나태해지고 열심히 일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지요.
이 점을 해결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캐논도 미국 컨설팅회사로부터 2년간 자문을 받아 2003년부터 성과주의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성과주의 제도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습니까.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충분히 보상하는 겁니다. 사람이 운영하는 제도에 완벽한 것은 없지요. 단점은 보완하고 장점은 지속적으로 살려가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자칫 태만해지기 쉬운 사원들에게 자극을 줄 수 있는 게 성과주의 시스템입니다. 캐논은 종신 고용을 보장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회사와 사원간에 신뢰가 형성돼 있습니다.
따라서 성과를 측정해 임금 격차를 둬도 90% 이상의 사원이 회사 결정에 승복하게 마련입니다.
불만을 가진 10% 사원도 상사들이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평가한 과정을 설명하면 결과를 인정하지요.
성과주의 시스템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공평하고 투명한 평가시스템이 우선돼야 합니다."
-일본식 경영 시스템은 앞으로도 유효하다는 얘기입니까.
"경영에 정답은 없습니다. 나라마다 법률 문화 습관이 다르니 일률적으로 어느 제도가 옳다고 말하긴 어렵지 않습니까.
경영자나 사원도 결국 그 나라 국민입니다.
문화나 전통에 맞춰 최선의 방식으로 경영하는 게 합리적입니다.
미국이라면 종신고용제가 절대로 통하지 않겠지요.
비즈니스의 목적은 이익을 내는 것인 만큼 이에 맞게 최선의 방식을 찾아야 합니다.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경영 전략이나 원칙은 있지만 조직이나 인사 관리는 나라마다 다를 수밖에 없지요.
일본에선 일본식으로 하는 게 가장 좋은 방식입니다.
한국도 한국 나름대로의 방식이 있을 겁니다."
-캐논은 매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특허권을 취득하고 있습니다.
비결이 무엇인지요.
"캐논은 창업 이후 기술우선주의를 원칙으로 삼아 왔지요.
자신의 기술을 만들고 그 위에 외부의 기술을 더해 끊임없이 신기술을 개발하고 사업화하는 전략입니다.
이미 갖고 있는 기술의 연장선에서 새로운 신기술을 끊임없이 개발하는 게 캐논의 기본 전략입니다.
이를 위해 매출의 13%를 연구개발(R&D)에 투입하고 있지요.
당연히 기술력에서 앞서게 되고 국제적인 특허권도 많이 취득하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기술력을 바탕으로 새 사업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디스플레이와 바이오테크놀로지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디스플레이 사업은 신기술 중 가장 먼저 상용화돼 곧 제품이 나올 것으로 봅니다.
빠르면 내년 하반기부터는 본격적인 제품을 시장에서 판매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규 사업에서 한국 전자메이커들과 경쟁하게 됩니까.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캐논의 제조 장비를 이용해 디스플레이를 만들고 있습니다.
캐논은 삼성 LG와 동일한 제품을 생산하지 않아 시장에서 부딪칠 일이 없었지요.
하지만 내년 캐논이 SED(표면전도형 전자방출 화면) 등 새로운 디스플레이 제품을 시판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한국 업체와 경쟁하게 될 것입니다.
다른 제품도 마찬가지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선의의 경쟁은 서로에게 이롭습니다.
그래야 좋은 물건이 나오게 되고 소비자에게도 유리하지요.
세계 시장은 넓습니다.
우리 회사가 제품을 만든다고 한국 회사에 직접 피해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봅니다."
-한국 기업들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기술력이 매우 빠른 속도로 강해지고 있습니다.
특허 취득건수도 급격히 늘고 있고 브랜드 가치도 매우 높아졌어요.
세계적으로 한국 기업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특히 삼성의 전략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캐논은 삼성 LG 등과는 LCD 제조장비나 반도체 칩을 거래하고 있고 롯데와는 복사기 사업을 함께 하고 있지요.
실적도 매년 크게 신장해 만족하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과의 추가 제휴나 한국 시장에 투자를 확대할 계획은 있는지요.
"지금 구체적으로 갖고 있는 계획은 없지만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한국 투자를 확대한다는 생각입니다.
캐논이 생산 중인 상품은 현재 롯데캐논이나 LG상사 등을 통해 한국 시장에 공급되고 있어요.
롯데와는 복사기를 중심으로 사업 규모를 확대하고 있지요.
필요한 사업이 있다면 투자도 늘릴 것입니다.
올 하반기에 한국을 한번 가볼까 합니다.
삼성 이건희 회장,롯데 신격호 회장과는 가까운 사이입니다.
이 회장은 정말 대단한 경영자예요.
삼성을 세계적 브랜드로 키운 사업 수완은 존경할 만합니다."
-기업인들이 지켜야 할 원칙은 무엇입니까.
"비즈니스의 목적은 이익을 내는 것입니다.
기업은 투자자에 대한 이익,사원의 생활 안정,자기 자본의 확충,사회에 대한 공헌 등 네가지를 모두 충족시켜야 존속이 가능합니다.
이를 위해서도 이익은 반드시 내야 합니다.
일은 수단이고 목적은 이익이지요.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되는 일은 당장 그만둬야 한다고 봅니다.
사장 취임(1995년) 직후 수익성 없는 사업에서 과감히 철수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경영자는 '이익 최우선' 원칙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합니다."
도쿄=최인한 특파원·이심기 기자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