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소유주가 부담해야 할 세금을 '바지사장' 등 명의 대여.피도용자에게 부과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법원 판결이 잇따라 나왔다. 이는 소득의 원천지에 세금을 매겨야 한다는 '실질과세의 원칙'을 분명히 한 것이다. 만약 외국계 펀드가 이름만 빌린 제3의 한국인을 내세워 국내에서 소득을 얻을 경우 사실상 소유주인 외국계 펀드나 국내 대리인 등에 과세할 수 있다는 법원의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유모씨는 지난 2001년 6월 알고 지내던 한 외국계 펀드의 국내 대리인인 이모씨로부터 코스닥 상장 기업 B사의 대표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유씨는 이씨와의 친분 때문에 무심코 자신의 명의를 빌려줬고 곧바로 B사 대표로 등재됐다. 경영에 일절 관여를 하지 않아 회사에 신경을 쓰지 않았던 유씨는 2003년 6월 국세청으로부터 50억원 가량의 법인세를 내라는 통보를 받고 깜짝 놀랐다. 유씨는 그때서야 비로소 B사가 청산 절차에 들어갔고 자신이 B사의 세금을 대신 납부할 의무가 있는 '청산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유씨는 수소문을 통해 이씨가 기업 인수합병을 통한 단기차익을 노리고 자신을 이용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작년 5월 "명의만 빌려줬기 때문에 납세 의무가 없다"며 국세청을 상대로 청산인의 제2차 납세의무자 지정취소 소송을 법원에 냈다. 이에 대해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권순일 부장판사)는 25일 "회사의 등기부상 유씨가 청산인으로 돼있다 하더라도 이는 명의를 빌려준 것에 불과해 (유씨가)세금을 납부할 의무가 없다"며 원고승소 판결했다. 이날 같은 법원 행정12부(조해현 부장판사)도 회사 대표가 자신의 명의를 도용해 주식을 취득했으므로 자신에게 부과된 증여세 6천4백여만원을 취소해 달라며 신모씨가 국세청에 대해 제기한 소송에서 "명의를 도용당한 사실이 인정되므로 세금을 부과할 수 없다"며 신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실제소유자와 명의자가 다른 경우 국세기본법상 등기 명의자가 실제소유자로부터 증여받은 것으로 본다는 규정이 있지만 명의자와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이 규정을 적용할 수 없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